스스로 판단하라/기독교 변증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ㅣ래바이 재커라이어스

NOMAN 2015. 11. 26. 10:18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ㅣ래바이 재커라이어스

리 스트로벨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은 반드시 나사렛 예수를 통하는 것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주장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만과 독선과 고집으로 여겨진다. 종교 다원주의와 상호 존중의 시대에 그런 배타적 주장은 정치적 오류요, 다른 신앙 체계의 뺨에 언어 폭력을 가하는 일이다. 다원론자 로즈메리 래드포드 루더 (Rosemary Radford Ruether)는 그것을 '허무맹랑한 종교적 쇼비니즘’ 이라 못박았고, 한 유대교랍비는 그것을 거만한우월적 태도를 부추기는 ‘영적 독재’로 표현하면서 바로 그런 신앙이 다른 이들을 향한증오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분명 오늘날에는 인도의 철학자 스와미 비베케난다(Swami Vivekenanda)가 표현한 것 같은 접근이 훨씬 쉽게 받아들여진다. 그는 1893년 세계 종교 회의에서 “우리 ‘힌두교도’는 모든 종교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며, 다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진짜 죄라고 말했다.

시간과 장소, 문화와 사람을 초월하여 공통의 진리가 되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의 상대주의 문화에는 그런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태도가 어울린다. 사실 현재 미국인 중에는 그런 진리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 2/3에 달한다.

무신론자 시절에 나 역시,종교에 다가가는 유일한 바른 길을 자기네가 독점하고 있다는 기독교의 주장에 격분하곤 했다. “도대체 자기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기들이 뭐라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거야? 예수의 사랑은 다 어디 갔어?" 그런 불만이 새어나왔다.

찰스 템플턴은 예수 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성경의 주장을‘참을 수 없는 오만’ 으로 보았다. 템플턴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스도인은 작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대략 5명 중 4명 꼴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신을 믿는다. 이 땅에 살고 있는 50억 이상의 사람들이 300가지가 넘는 선을 받들고 섬기고 있다. 정령 숭배자나 부족 종교까지 합한 다면 그 수는 3천 가지를 넘어설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만이 옳다고 믿 어야 하는가?"

전 세계 인구가 숭배하는 신들의 숫자를 턱없이 적게 말하기는 했지만 템플턴 의 요지는 분명하다. 예수의 배타성은 오늘날 신앙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큰 장애물 중 하나이다.

Q 리 스트로벨
A 래바이 재커라이어스

기독교의 오만

Q (1/8)
  • 예수가 하나님께 가는 유일무이한 길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은 극히 오만한 것이 아닌가?
  • 그들은 왜 자기들만 맞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는 말을 정당한 주장인 양 내세우는가?
A
  • 배타성을 주장하는 종교는 비단 기독교만이 아니다.
  • 오만한 그리스도인의 배타성 주장은 다른 주요 종교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
  • 그러므로 오만하다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논리적 공격이 될 수 없다.
  • 이슬람교 - 신학적인 면, 언어적인 면
  • 회교도 - 코란이야말로 이슬람의 독점적이고 완전무결한 기적이라고 믿는다. 코란은 아랍어로 읽어야만 뜻이 통하기에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코란을 속되게 하는 일이다.
  • 불교 - 고타마 싯다르타가 힌두교의 두 가지 근본 주장, 즉 힌두교 경정인 베다의 궁극적 권위와 카스트 제도를 거부하면서 생겨났음(힌두교에 배타적 입장)
  • 힌두교 - (1) 업보의 법칙 (2) 베다의 권위 (3) 윤회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다.
    • 힌두교가 당신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힌두교가 말하는 진리의 개념과 부합할 때 한해서이다.
    • 힌두교의 진리 개념은 혼합주의이다.
    • 혼합주의란 상이한 신앙은 물론 심지어 상반된 신앙까지 한데 융합하려는 시도이다.
  • 시크교 - 힌두교와 불교 둘 다에 반대하여 생긴 종교.
  • 무신론자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거부한다.
  • 바하이교 - 배타주의자는 거부


Q (2/8)
  • 모든 진리는 원칙적으로 배타적인가?
A
  • 진리가 뭔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 주장이 아니다.
  • 진리는 거기에 어긋나는 것은 잘못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진리는 그 반대를 배제한다.
  • 진리의 배타성을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진리 주장이다. 때문에 진리의 배타성을 거부하는 자들 역시 오만한 것이 된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예수의 주장에 담겨 있는 의미
    • 1) 진리란 절대적이다.
    • 2) 진리란 알 수 있다.
  • 예수의 배타성 주장은 그분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원칙적으로 틀렸다는 의미이다.
  • 진리에 대한 저항은 너무 강렬해서 상대가 아무 잘못이 없을 때에도 여전히 폭력과 미움을 품을 수 있다.


네 가지 근본 문제

누구나 자기가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 역사상 그런 주장을 편 이상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진짜 관건은 예수의 이 주장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Q (3/8)
  • 어떤 근거로 예수의 주장을 믿는가?
A
1) 예수의 부활 때문이다.
  • 부활 사건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
  •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의 신성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다른 모든 종교 체계는 진리일 수 없다.
  •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설득력이 강하다.

2) 예수님만이 네 가지 근본 문제에 대한 답을 준다.
  • 기원, 의미, 도덕, 운명의 네 가지 문제들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만이 현실적인 답을 준다.
    • 불교 - 기원과 도덕 면에서 부처의 답은 일관성이 없다. 불교는 무신론은 아닐지 몰라도 엄격히 말해 ‘비신론’ 종교이다. 창조주가 없다면 인간의 도덕법은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 힌두교 - 윤회, 모든 출생이 환생이며 모든 생애가 전생의 상벌이라면 최초의 생애는 무엇에 대한 상벌인가? 논리적으로 함정이 있다. 간디도 모순이 너무 심하기에 자기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힌두교 경전에서 일부를 삭제하고 싶다고 했다.
  • 반면 예수의 답은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현실에 부합하고 내적 연관성도 있다.

     (1) 기원
    • 성경은 힌두교의 주장과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지 않고 하나님과 별개의 존재라고 말한다.
    • 우리는 저절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인간의 도덕적 준거이다.
    • 유일신 종교가 아니고는 어떤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 인간의 도덕적 준거를 설명하지 못하기는 자연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 이 도덕적 준거를 인간은 현실 속에서 경험한다.
    •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다고 한다.
    • 인간이 열매를 먹는 순간 하나님과 같아져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했는데 곧인간이 선악의 규정자가 된다는 뜻이다. 바로 거기서 인본주의가 태동했다. 
    • 하나님을 향한 의지적 반역과 거부는 인간의 현실에서 확인된다.
    • 말콤 머거리지 (Malcolm Muggeridge)의 말대로 인간의 타락은 경험적으로 가장 분명한 실체인 동시에 철학적으로 가장 거부되는 실체이다.
     (2) 의미
    • 하나님은 착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
    • 서로 사랑하라는 의미로 부르시지도 않았다.
    • 의미는 오직 예배 안에서만 존재한다. 곧 예배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하나님 자신이다.
    •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전제될 때에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3) 도덕
    • 기독교는 도덕의 기반에 문화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 자체에 둔다.
    • 도덕법은 인간 위에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 부속된 것인가? 도덕법이 인간 위에 있다면 그 뿌리는 어디란 말인가?
    • 도덕법은 그 뿌리를 영원하고 도덕적이며 전능하고 무한하신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품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4) 운명
    • 인간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반으로 한다.
    • 부활은 그분의 신성을 확증한 사건이자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준 사건이다.
    • 부활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기에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 수 있으며,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을 수 있다.
    • 예수님의 인격 자체가 인간의 운명에 대한 답이다. 
    • 성경은 단지 신비주의나 영감의 책이 아니라 지리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 한 인간이 정직한 회의론자라면 성경은 그를 감정이 아닌 살아계신 한 인격에게로 인도한다.


장님들이 만지는 코끼리

Q (4/8)
  • 기독교에 대한 재커라이어스의 말이 맞는다해도 반드시 다른 모든 종교가 틀린 것일까?
  • 핵심으로 들어가면 종교는 모두 통일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사용되는 언어와 이미지, 전통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동일한 신념을 전하는 것이지 않을까?
  • 세계의 모든 종교는 본질상 하나님이 만인의 아버지고 인류가 만인의 형제라고 가르친다. 세계의 모든 신앙 체계가 동등하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닌가?
A
  • 하나님이 만인의 아버지?
    • 모든 종교가 똑같은 것을 가르친다는 주장은 종교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불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주장조차 하지 않는다.
    • 힌두교의 영향력 있는 철학자 샨카라(Shankara)는 유신론이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정상, 즉 하나님과 구분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데 있어 유치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믿음은 모든 종교의 공통된 교리가 아니다.
  • 인류가 만인의 형제?
    •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형제 자매이다. 하지만 우리가 형제 자매인 이유는 단지 하나님께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이 근거가 없다면 형제 됨이란 허울좋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각 종교는 저마다 구별될 뿐 아니라 상호 배타적인 종교적 교리이다. 모든 종교가 동시에 다 진리일 수는 없다.

Q (5/8)
  • 각 종교마다 진리가 한 조각씩 들어 있지 않을까?
    • 신학자 존 히크(John Hick) "각 종교는 결국 궁극적 ‘실체’, 즉 하나님에 대한 문화적으로 상이한 반응"
  • 장님 세명이 코끼리를 만져 셋의 힘을 합쳐 코끼리를 설명함.
    • 각 종교가 진실하고 그 나름대로 유효하되 자체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A
  • 무신론도 진리 한 조각을 가지고 있나? 아니면 무신론은 여기서 제외되는 것인가? 
  • 무신론의 근본 교리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데 무신론에도 한 조각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 한 조각은 무엇인가?
  • 사실상 모든 주요 종교에는 진리의 단면들이 있다. 각 종교에는 위대한 사상과 신념이 녹아 있다. 동양의 유명한 철학서들을 읽어 보면 깨닫는 바가 아주 많다.
  • 그런데 이 것은 세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 이야기에서 각각의 장님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나무, 코를 만지면서 밧줄, 귀를 만지면서 부채라고 한다.
  • 눈 뜬 사람은 진리를 안다. 장님이 추측하여 말하는 것은 틀렸다.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핵심이다. 모든 진리는 그 분 안에 한데 모여 있다.
  • 다른 곳에 진리의 단면이 있다 해도 진리의 총합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다.
  • 히크의 설명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다는 것과, 따라서 그분의 참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다. *요 1:1,14


구원, 의, 예배

Q (6/8)
  •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몰몬교, 힌두교를 막론하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이웃을 대하는 방식이 신학적으로 무엇을 믿는가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A
  •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이웃을 대하는 방식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믿는가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믿는 내용이 그대로 삶의 방식으로 반영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 교리 문서에 서명을 했든 안 했든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그것이  적으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도덕이 곧 삶의 전부인 양 말하면 안된다.

Q (7/8)
  • 도덕이 삶의 핵심이 아니라면 삶이란 무엇인가?
A
  • 예수 그리스도는 나쁜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 그분은 죽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세상에 왔다. 하나님 앞에 죽어 있는 자들을 산 자가 되게 하려고 온 것이다.
  • 아무리 바르게 잘 산다 해도하나님의 기준과 성품에 부합할 수 없다.
  • ‘죄’라는 단어는 과녁을 빗나갔다는 뜻이다. 그 정의가 맞다면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가장 중요한 진리다. 그분이 없다면 올바른 삶을 고사하고 옳은 것을 믿을 수조차 없다.
  • 사람이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몇 가지 근거
    • 조셉 플레처  oseph Fletcher)의 상황 윤리,
    • 아인 랜드(Ayn Rand)의 자기중심적 휴머 니즘,
    • 칸트의 의무 개념 등의 예닐곱 가지 
    • 하지만 각 이론은 피차 상충히는 것이었다.
    • 초월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도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은 단순한 생존으로 귀결됩니다.
  • 영적인 생사의 문제야말로 바른 출발점이다.

Q (8/8)
  • 하지만 삶의 방식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간디가 대다수 그리스도인들보다 덕망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디는 이유만으로 간디가 지옥에 가야 까닭은 무엇인가?
A

  • 성경에는 그 답이 들어 있다.
  • 첫째,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이 인간을 천국이나 지옥에 보낼 수 없다는사실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도 인간을 천국이나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다.
    •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 자신의 반응에 달린 문제이다.
    •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물론 그분의 은혜로 가능하지만 말이다.
  • 둘째,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일 셈이냐고 물었다.
    • 아브라함 스스로의 대답 :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 간디나 혹은 기타 다른 누구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결국 의를 행하실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 만일 그 은혜를 거부하면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 성경은 구원받기 전에는 누구도 선하지 않다고 말한다.
  • 출애굽기에는 세 가지 사건이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도덕법을 주신후 성막을 주심
    • 구원 -> 의 -> 예배
    • 구원받지 않는 한 의로울 수 없다.
    • 구원받고 의롭게 되지 않는 한 예배할 수 없다.
    • 시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여 마음이 청결한 … 자로다
  • 만일 스스로 선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은 본질상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말하는 자는 선하든 악하든, 하나님의 근본 원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 구원이 인생의 첫 단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