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여 준행하라/연구ㅣ성경 주제

찰스 스윈돌ㅣ성경 사본의 오류에 대하여

NOMAN 2016. 9. 21. 11:37
성경 사본의 오류에 대하여


나는 본문 비평이라는 말을 늘 싫어했다. 그 말에서는 성경 본문이 무의미해지거나 신빙성을 잃을 때까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평생을 바쳐 성경을 비평한다는 느낌이 배어난다. 불행히도 일부 학자들이 여태까지 시도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본문 비평의 참된 취지를 추구하는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 취지란 수천 개에 달하는 고대 사본들 가운데 신약의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 충실하게 기록한 원문이 어느 사본들에 들어 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바울, 누가, 야고보, 베드로, 요한 등 1세기의 기독교 인물들이 글을 쓸 때 성령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넣도록 그들을 감화하셨고, 또한 그들의 글에 오류가 없도록 막아주셨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리가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잉크로 보존되었다. 글의 내용이 하나님의 무오한 진리로 즉각 인정되었으므로 필사자들은 그것을 손으로 베껴 다른 교회들에 돌렸다. 사본들에서 다시 사본들이 나오고, 그 사본들에서 나중에 더 많은 사본들이 만들어졌다. 머지않아 곳곳의 교회로 수백 부의 사본들이 퍼져나갔고, 그러는 동안 원본의 파피루스는 점점 낡아졌다.

원본들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안타깝게도 필사 과정은 완벽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단어가 더해지기도 하고 누락되기도 했으며, 이 글자가 저 글자로 혼동되어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한 사본의 소소한 오류들은 그것을 베껴 쓴 모든 사본에 그대로 옮겨졌다. 간혹 필사자는 이전의 과오(또는 자기에게 과오로 보이는 부분)를 고치려다가 본의 아니게 더 틀리기도 했고, 그래서 또 다른 변형된 문장을 유포하기도 했다. 여러 세기가 지난 지금 신약 성경의 사본이나 사본의 일부는 모두 5천 개가 넘으며, 그 모두에 신약 원문이 일부라도 들어 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 본문이 어떻게 달라져서 퍼져나가는지 그 좋은 예를 흔히 우리 주변에 있는 게시판에서 볼 수 있다. 예전에 내가 ‘태도(Attitudes)’라는 제목으로 써 붙인 짤막한 글을 어떤 사람이 베껴 적었다. 그 사람은 간단한 포스터를 제작 하려고 그 글을 종이에 타자로 쳤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들어 복사하여 친구들에게 주었고, 그 친구들은 다시 그것을 자기네 게시판에 붙였다. 그 뒤로도 사람들은 사본의 사본을 다시 손으로 베끼거나 팩스로 보내거나 복사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내 원본은 어찌나 많이 복사를 하고 팩스를 보냈던지 거의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글자들이 얼룩지고 번지고 흐려졌던 것이다. 하지만 누락된 글자와 단어까지 있는데도 그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약 원본의 사본들도 훨씬 더 정성이 들어간 것만 빼고는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필사자들은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그래도 수백 번의 필사를 거치는 동안 오류가 생겨났다.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으므로 걱정할 것은 없다. 손으로 필사하는 방식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거의 2천 년 전에 원저자들이 쓴 하나님의 진리를 잘 보존해주었다. 오류는 거의 다 소소한 것들이며, 따라서 원본의 의미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의미에 영향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워낙 사본의 수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과오를 찾아내 고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변형된 문장에는 원문에 무언가가 첨언되어 있기 때문에 대개 원본의 표현을 쉽게 가려낼 수 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성경 원본을 복원하기 위하여 수천 개의 고대 사본을 비교 분석하는 노련한 ‘본문 비평가’ 들의 헌신과 전문 지식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성경은 더할 나위 없이 믿을 만한 사본들인데(거의 초대 교회에 있던 것들만큼이나 징확하다) 모두가 경건한 학자들 덕분이다.

- 찰스 스윈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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