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여 준행하라/연구ㅣ교회사

초대교회사ㅣ02 유대교와 교회

NOMAN 2017. 12. 1. 23:17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A.D 29 ~ A.D 313)


2. 유대교와 교회 P25-28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자세한 전도의 기록은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뿐이지만 다른 사도들도 역시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 믿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고,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 (행 8:4)

아무리 적은 수라도 믿는 이가 있는 곳에는 교회가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지속적인 복음전파가 이루어졌으며 각 교회는 처음부터 성령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비록 각 교회는 교회들 간의 어떤 조직이나 연합체에 예속됨이 없이 독립적이었지만 다른 교회들과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였고 말씀을 전하는 형제들의 빈번한 방문으로 그런 관계는 계속하여 새롭게 되었다(행 15:36).

초기의 복음 선포는 유대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에게 행해진 것으로 빈번히 “회당(Synagogue)”을 통해 이루어졌다. 유대인들의 정신적 본향인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자 그들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회당 중심으로, 계속되는 가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정신적 결속을 이루어냈다.

예수께서는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을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의 중심에 두셨으며 변함없는 규범으로 성경을 주셨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교회를 근절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한 곳에서 교회가 파괴되면 다른 곳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흩어진 유대인들은 매우 열렬히 이방인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렸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전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B.C. 3세기 경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이 “70인역 성경”(Septuagint Version) 이라는 이름으로 헬라어로 번역되었는데, 그당시뿐 아니라 이후 오랫동안 헬라어가 여러 민족간의 중요한 통용어였으므로 이것은 이방 민족들에게 구약 성경을 알게 하는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되었다.


 *참고 - 70인역 번역 (어? 성경이 읽어지네)

온 세상을 다 얻다시피 통일천하를 한 알렉산더는 그 어마어마한 땅들을 정복했지만 갑자기 죽는 바람에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습니 다. 그러자 그의 부하 장군들 사이에는 서로 권력을 잡으려는 투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중에 두사람이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되는데, 프툴레미와 셀레우코스였습니다. 프툴레미는 이집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셀레우코스는 바벨론 땅을 갖게 됩니다. 이 두 경쟁자는 팔레스타인과 뵈니게를 탐냈는데 결국 프툴레미 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헬라인이 다스리는 이집트’의 속국이 됩니다. 이 왕조는 1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을 다스립니다. 헬라의 속국이었을 때는 팔레스타인에 이렇다 할 중요한 사건이나 자료들이 없는데 반해 이 프톨레미 왕조는 유대 공동체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B.C 300년). 

그렇지 않아도 과거 수백년 동안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이집트에 거류민으로 살고 있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프툴레미1세가 팔레스타인 원정 중에 많은포로들을 끌고 왔다고 합니다. 그밖에 도 생활 터전을 찾아 이민 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찍이 프툴레미 1세는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해서 지중해를 낀 해변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개발해서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 도시는 오늘날까지도 대도시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도시에만도 약 백 만 명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있었다고 하니 대단히 많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만나는 아볼로라는 사람도 알렉산드리아 출신(행 18:24)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집트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 동안 히브리말로 쓰여진 구약성경을 가지고 그 땅의 공용어인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만들게 됩니다. 

B.C. 3세기 경, 프톨레미 2세의 명령에 의해 히브리어로 된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최초의 번역본을 칠십인경 혹은 칠십인역’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더가 세계를 헬라화시켰기 때문에 유대인의 점유물이었던 구약성경도 헬라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신약시대에 와서 온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도록하는 예비 작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접하게 된 이방인들도 직접 헬라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경건한 이방인들이 생기게 된 바탕이 되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유대인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세워졌던 것처럼 교회를 반대하는 최초의 반대자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빠른 시일 내에 곳곳에 퍼졌고 이로써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자, 교회는 희랍사상 및 로마 권력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유대 종교는 물리적인 박해로써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의 지배 아래에 있게 함으로써 더욱 가중된 정신적 탄압을 가했다(갈 2:16_바울의 지적).”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를 보면 교회를 위협한 최초의 심각한 위험은 교회를 유대 종파의 하나로 그릇 인식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지식을 온 세상에 전하려는 힘과 자유를 잃게 하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