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여 준행하라/연구ㅣ교회사

초대교회사ㅣ05 교회의 세속화와 그에 대한 저항들

NOMAN 2017. 12. 1. 23:19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A.D 29 ~ A.D 313)


5. 교회의 세속화와 그에 대한 저항들 P34-41

교회가 팽창하게 되면서 처음의 열정은 시들게 되었고, 점차로 세상과 세상적인 삶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형국으로 전진되기까지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간의 조직이 점차로 발전되면서 교회 안에는 개혁을 추구하는 모임도 생기게 되었다. 또한 어떤 교회는 그 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가기도 했으며, 본래 신약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교리나 규례를 고수하고자 했던 또 다른 교회들은 원칙과 모범을 저버린 교회와 자신들이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가톨릭 교회 조직이 우세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글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에 동조하지 않던 자들의 글들은, 금지되어왔던 연고로, 단지 그들을 반박하는 입장에서 집필된 저작들로부터 그 일부 자료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3세기 동안에는 연합된 한 가톨릭 교회와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다양한 이교도 집단이 있었다는 선입관을 가지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어떤 자기만의 독특한 입장과 특징을 나타내는 각기 다른 분파가 많았고, 상호배타적인 상이한 교회 집단이 많이 있었다.

(어떤 강렬한 영적 운동을 묘사하는데 그 일에 앞장섰던 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때로 편리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기치 않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러한 사랍들이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또는 대표자로서 비중있는 인물로 취급될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영적 운동 그 자체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항상 잊어서는 안되겠다.)

교회 안에서 점차로 세상적인 요소가 자리잡게 되고 지도자들이 영적 능력 대신 지식을 더 중요시하게 되면서, 이에 실망한 많은 신자들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충만과 능력을 경험하고자 하는 깊은 열망에 젖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가르쳤던 교훈과 규례로 돌이키고자 하는 영적 회복과 갱신을 원하게 되었다.


1) 몬타누스파(Mintanists) P35-36

- 여전히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 안에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
- 몬타누스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이완된 태도와 타락한 당신의 풍조를 거스려 저항하게 되었음.
- 특별한 두 여인 프리스카(Prisca)와 막시밀라(Maxmilla) 안에서 성령의 특수한 현현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기도 했음.
- 당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에 의한 박해(AD.177)는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영적 열망을 촉진 시켰음.
- 몬타누스파가 바라던 것 :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회중을 일으키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교회에서 성령께 합당한 지위를 돌려 드리는 것이었음.
- 저자 의견 : 비록 그들 가운데 어떤 영적 계시에 대한 과장된 주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당시 상황에 합당한 개혁을 가르치고 실천했음.
- 몬타누스파는 자원자들로 이뤄진 신앙 공동체 가운데 기독교의 뚜렷한 증거가 나타나기를 끊임없이 열망함.
- 가톨릭 조직이 감독들에게 점점 더 교회에 대한 관리권을 부여했던 반면에 몬타누스파들은 교회를 지도하는 것은 성령의 특권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자리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함.
- 동방에서는 곧 독립적인 교회로 분리하게 되었으나 서방에서는 몬타누스파가 가톨릭 교회와 서로 분리되기 직전까지 오랫동안 교회 안의 단체로서 남아있었음.

  *몬타누스 (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

몬타니스트 운동 : 156-220 : 몬타니스트(Montanist 혹은 ‘새로운 예언자들’)은 교회가 성령의 역동적 활동을 강조한 신약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엄격한 도덕 기준과 거짓 예언 때문에 대다수 크리스천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새로운 예언자 운동

말씀과 성령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감독들이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2세기 크리스천들은 또 다른 의문에 사로잡혔다. “무엇이 교회를 하나로 묶는가? 전통인가? 성경인가? 신앙의 규칙인가? 하나님의 영인가?’ 물론 기록된 말씀이나 하나님의 영 중 어느 하나가 단독으로 크리 스천들을 하나로 결속한다는 것은 아니다. 말씀과 성령이 함께 역사하여 교회를 하나로 결속시킨다.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형성하고 성령은 믿음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로마 제국 서부지역 교회들은 성경과 신앙의 규칙과 로마의 감독을 통해 깨달은 대로 말씀에 초점을 두었다. 이 서부지역의 제도는 사람들의 믿음에 견고한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사도행전을 흠빽 적시고 있는 성령의 기적적인 활동은 다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행2:17,18; 욜 2:28,29)라는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새로운 예언자들이 교회 갱신을 외치다

A.D 100년 경, 성령과 개인의 성결함을 강조히는 새로운 기운이 소아시아(터키)에 있는 교회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몬타니즘’(Montanism), 즉 새로운 예언자 운동’ 이라고 불린 이 운동은 부르기아에서 시작되었다. A.D 160년 경, 3명의 부르기아 신자들(두 여자와 한 남자)이 예언하기 시작했다. 프리스카(Prisca)와 막시밀라(Maximilla)와 몬타누스(Montanus)이 세 사람은 철저히 자신을 부인할 것을 동료 크리스천들에게 외쳤다. 

로마와 소아시아 교회의 지도자들은 소위 ‘새로운 예언자’라고 불린 이들을 탄핵했다(나중에 로마의 크리스천들과 새로운 예언자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양측 모두 동일한 ‘주님’을 위해 죽음을 맞았지만 새로운 예언자들은 로마의 크리스천틀을 잡아먹은 짐승에게 다시 먹히는 것만은 거부했다). 하지만 모든 감독들이 새로운 예언자들을 탄핵히는 결정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감독은 교회가 새로운 예언자들을 탄핵함으로써 진실한 예언자틀과 거짓 예언자들을 모두 거부한다고 논박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새로운 예언자들이 성령의 활동을 강조하는 점을 기뻐했다. 새로운 예언자들의 엄격한 도덕 기준은 다른 크리스천들을 자극했다. 그런데 왜 그들이 배척을 당한 것일까? 혹자는 새로운 예언자들이 성경을 의지하는 대신 자기들의 예언을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들이 자기들의 예언을 성경 위에 놓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다음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첫째, 새로운 예언자들은 잘못된 예언을 했다. 몬타누스와 프리스카는 페푸자(부르기아 사막의 촌구석)에 새 예루살렘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런 잘못된 예언 때문에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신 13:1-5)

둘째, 새로운 예언자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도덕 규율을 요구했다. 그들은 결혼을 금지했고, 잦은 금식을 요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더 높고 더 거룩한 세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극단적인 자기 부정을 외쳤다.
*참고 - 성령주의란?(세계 교회사/ 홍정현P)
 
초대교회 당시에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듣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성경이 필요없고 나는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는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 했는데 이제는 성경이 필요없고 내가 하는 말이 곧 하나님 말씀이다 라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성령주의자라고 합니다.

성경과 성령은 항상 동일한 보조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사람이 성령으로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말이 성경에 맞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마르키온파(Marcionites)(=말시온파) P36-38

- 마르키온(말시온), 85년 흑해 연안 시노페(Sinope)에서 출생함
- 사도 베드로의 사역지였으며 아굴라의 고향인 본도(the Province of Pontus)지방에 있는 교회에서 교육받으면서 점차 자신의 가르침을 발전시켰음.
- 그는 여러가지 큰 문제들, 즉 세상의 악(惡)에 관한 문제, 구약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과 신약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과의 구별의 문제,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개념인 진노와 심판, 그리고 사랑과 자비의 문제, 복음과 율법의 문제 등을 다루면서 자신 생각을 굳혀 나갔음.
- 말시온은 보통 교회에서 이해하고 있는 성경을 근거해서는 이와같은 차이들을 조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이원론을 받아들여, “세상은 최고의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유대인의 신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구속자 하나님은 세상과 전혀 관계가 없었으나, 우러난 사랑으로 말미암아 실패한 세상을 구원하고 비참한 상태에 빠져있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주장했음. 
- 마르키온은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의 의무는 “유대주의와 유대주의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왔던 기존 그리스도교의 틀에 박힌 형식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음. 
- 자신의 견해가 성경을 통하여 지지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마르키온은 가장 격렬히 경전을 비판하는 자가 되었음. 그는 자신의 이론을 성경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와 명백히 상반되는 것은 모두 거부하였고, 반면에 그것을 지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남겨두었음.
- 마르키온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도 성경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견해에만 맞추려 하였고, 원하는 곳에 자신의 견해를 첨가하기까지 했음. 그리하여 급기야는 이전에는 인정하였던 구약성경 전체를, 지존자요 구속자인 하나님이 아닌 유대인의 하나님에 대한 계시와, 그리스도가 아닌 유대인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서 거부하기에 이르렀음.
- 진실한 복음은 오직 바울에게만 계시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는 바울 서신 중 일부와 누가복음만을 제외한 신약성경도 역시 거부했는데 이것마저 후에는 자신의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을 멋대로 삭제한 후 재편집했음. 
- 그는 신약성경의 나머지 책들을 “진정한 복음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띤 유대주의자틀의 작품”이라고 일축했음. 마르키온은 그들이 통일한 목적으로, 그가 반대한 귀절들을 그가 인정한 책 속에다 삽입해 넣었었다고 주장함. 이렇게 축약된 신약성경에 마르키온은 사도행전을 대신하여 자신의 작품인 “반립” (反立, Antitheses) 을 덧붙였음.
- 그들의 교회에서는 물질적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에 맞춰 엄격한 금욕 생활을 했으며 결혼을 금하고 순결을 맹세하는 이에게만 침례를 베풀었음.
- 그들은 예수의 몸은 우리의 몸처럼 느낄 수는 있으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영(幻影)이었다고 여겼음.

 *말시온(세계교회사/홍정현P)

말시온 같은 사람은 물질은 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을 읽어 보면 죽이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말시온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도 악한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은 선한 신이였다고 주장했으며 사도바울의 서신만을 성경이라고 인정하고 성경을 따로 만들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말시온 같은 사람들은 그 당시에 성경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였으므로 그 사람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이렇듯 초대교회 당시에 이단들이 너무나도 활개치고 박해도 많이 받는 시대이므로 말시온 같은 사람은 사도바울의 서신만을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그래서 무엇이 진짜 성경인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말시온(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 P39)

영지주의의 유력한 한 분파는 어떤 설교자의 아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말시온(Marcion)으로 그의 아버지는 흑해 남부 연안의 감독이었다. 말시온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목회자가 되는 대신 선주가 되어 여러 곳을 여행했다 여행하는 동안 육체적인 것들을 혐오하게 되었는데도 그는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A.D 140년 경, 그는 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인 한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회에서 추방했다. 말시온은 그 길로 로마로 도망쳤다. 로마에 있는교회들이 그의 죄를 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계산대로 로마교회는 부유한 선주를 선뜻 받아주었다. 아마 그가 바친 거액의 헌금이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디듬고 체계화시켜 나갔다.

말시온은 다른 영지주의자들처럼 영적인 비밀을 얻기 위해 성경을 탐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상 대부분을 영지주의 세계관에서 빌려왔다. 말시온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구약에 드러난 물질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랑이 충만하신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혹자의 육체를 부활시키거나 누구를 육체적으로 징벌할리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구세주가 하나의 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간처럼 보일 뿐이지 진짜 인간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이 사상이 ’가현설’로 알려지게 되었다_가현설 : 그리스어’도케인(docein)’은 ‘~인 듯 보인다’라는 뜻.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육체를 소유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이 가현설을 믿었다.)

말시온의 추종자들은 세상이 악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세상적인 욕망과 욕구를 부정했다. 그들은 성만찬을 거행할 때에도 물만 마셨다. 포도주가 육체적 쾌락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일체의 성적 접촉을 금했으며 심지어 부부의 성관계도 금지했다.

하지만 말시온도 자신의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저작이 그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는 크리스천들을 위한 믿을 만한 성경 목록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작성한 성경목록에는 누가복음과 바울의 서신 10권을 포함하여 오직 11권의 책만 들어 있었다. 더욱이 누가복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를 삭제했고, 바울의 서신에서도 구약성경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을 없애버렸다. 신약에서 구약의 하나님을 완전히 추방해버린 것이다.

말시온 자신은 새로 만든 신약성경에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로마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A.D 144년, 로마교회는 말시온이 바쳤던 거액의 헌금을 되돌려주었다. 폴리갑을 비롯한 몇몇 크리스천들이 말시온을 거짓 가르침에서 돌이켜 옳은 길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으나 그는 끝내 이단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로마 교회는 그를 출교하기로 결의했고, 교회에서 쫓겨난 말시온은 이탈리아와 소아시아에 자신의 교회를 세워 로마 교회에 대항했다.
*마르키온, 말시온 (빠른검색 기독교 변증 P148-150)

서기 135년에 폰투스 지방 시노페의 주교의 아들이자 부유한 선박 제조업자 인 마르키온Marcion은 로마로 와서 교회에 20만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거금을 헌금했습니다. 그 직후부터 마르키온은 로마 교회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마르키온의 신학적 견해는 로마뿐만 아니라 지중해 세계 전체의 기독교인들이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신학적 견해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서로 다른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히브리 성경과 예수 및 사도들의 가르침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고 본 반면 마르키온은 이 둘 사이에 조화될 수 없는 불연속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거의 한 세기 통안 기독교인틀은 히브리 성경을 성경으로 받이들여 온 터였는데 말이죠.

마르키온은 예수가 곧 히브리 성경 말씀의 성취라는 그와 같은 깊은 확신에 도전하기 위해 구약 및 구약에 제시된 모습과 같은 하냐님에 대한 어떤 언급도 완전히 제외시키고 자기 니름대로 새로운 정경을 만들었습니다. 마르키온의 정경에는 10편의 바울 서신과 누가복음이 포함되었습니다. 마르키온은 이 책들조차 유대교의 요소와 ‘진노하고 복수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없애고 새로 편집했습니다.

2세기와 3세기의 교회에서 마르키온과 그 밖의 이단들이 갖는 한 가지 가치는 그들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전해 내려온 전통에 비추어 사고하고 그 전통의 진리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재음미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마르키온이 로마에 나타나기 20년 전인 서기 115년에 이미 안티오크의 주교 이그나티우스는 ‘복음서’를 일컬어 권위를 가진 문헌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서는 당시 이미 낱개의 여러 두루마리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보는 책처럼 한 사본으로 함께 묶여 있는 한권의책으로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복음서’는 이 책의 제목이었고 그 각 부분에는 ‘마태에 의한 복음’ , ‘마가에 의한 복음 등의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도 이미 2세기 초에 한 부의 사본 속에 포함되었습니다.

마르키온이 보기에 가장 높은 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이지 유대교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은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의 가르침과 예수에 대한 설명은 예수가 히브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자 자신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연속된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르키온은 자기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예수에 대한 사도들의 가르칩은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마르키온이 할 일은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곧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관점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었죠.

이 대목에서도 마르키온은 신약 성경올 정경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마르키온이 그런 일을 벌여서 동시대인들의 생각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정정화과정도 훨씬 느리게 진행되고 쟁점도 훨씬 덜 부각되었겠죠.

마르커온의 정경은 어떤 책이 성경의 권위를 가진 책이냐에 대해 아직 최종적이지는 않지만 확고하게 발달된 전통이라는 배경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브루스 메츠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세기가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교회들은 현재의 4복음서, 사도행전, 13편의 바울 서신, 베드로전서, 요한 1서 등을 포함하는 정경을 소유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서와 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 일곱 권의 책은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 책들의 정경성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의 원인 내지 결과였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의문이 제기되거나 기독교의 가르침을 변호할 필요가 생길 때 이 책들은 교회가 유일한 권위이자 판단 근거로 의존했던 책들이었습니다. 이 책들에 그토록 큰 권위가 부여되었던 이유는 이 책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라는사명을 예수 자신에게서 개인적으로 받은 이들인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노바티안파(Novatians) P39

교회가 선약성경에 제시된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은 시초부터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런 저항의 결과, 타락한 교회 내에 자신들을 악으로부터 지키며 영적인 회복의 도구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내어쫓겨 그들끼리 분리된 모임들(sepa rate congregations)을 이루기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당시의 상황을 도저히 따를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떠나 새로운 단체를 형성했다. 

후세대에서는 사도의 가르침을 따랐거나 사도시대로부터 간단없이 이어져 온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던 교회들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그들은 콘스탄틴 시대 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자신들을 특정적으로 일컫는 이름을 스스로 취한적이 없었으나 ‘카타르파’(Cathars) 또는 ‘청교도’(Puritans) 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 노바티안은 박해 기간 동안 교회를 동요시켰던 배교자 문제, 즉 침례를 받은 후 우상을 섬겼던 이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관점을 취했음.
- 순교당한 파비안(Fabian)의 뒤를 이어 코르넬리우스(Cornelius)가 로마의 감독이 되었으나 배교자들을 받아들이려는 입장을 취한 탓에 이에 반대하는 소수가 ‘노바티안’을 감독으로 뽑게 됨. 그러나 A.D 251 로마 종교회의에서 파문당하고 맘. 노바티안은 순교.
- 노바티안의 순교 후 카타르파, 노바티안파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추종자들은 계속 늘어갔음. 그들은 가톨릭 교회나 그 교회에서 행하는 의식에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았음.
 

4) 도나투스파(Donatists)  P39-40

- 노바티안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음.
- 성례를 행하는 사람의 인격에 강조점을 두었음.
- 도나투스 주의(Donatism) : 어떤 감독이 박해를 당했을 때,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면(배교했다면) 그 감독이 수행하는 모든 의례와 의식이 무효라는 신념체계, 도나투스주의(초기 지도자의 이름을 딴 것)로 인해 북아프리카의 교회들이 311년에서 5세기까지 분열(독립교회 형성)되었음(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 P54)


5) 마니교(Manichaeism) P40

- 영지주의 종교
- 창시자 마니(Mani, A.D 216년 경 바빌론에서 태어남)의 이원론적 체계는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불교의 요소들을 혼합한 것임.
- 스스로 노아와 아브라함과 조로아스터와 불타와 예수에 의해 시작되고 수행된 일을 자신을 통하여 완성시키도록 소명받았다고 선언.
- 중국과 인도에서도 가르침.
- 십자가 형으로 죽음.
- 바빌론과 사카르칸드(Samarcand)지방에서 많은 추종자, 서방에서도 전파되었음.

 *마니교(순례하는 교회 2장 P56)

마니교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시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자연의 증거를 한결같이 공격했다. 성경의 맨 처음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라는 말씀 안에서 성경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최고라는 것올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올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 더라"(창 1:31). 

그런데 마니교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것은 모두 어둡고 사악한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일축했고 오직 영적인 것만이 진실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주장함으로써 본 질적이고도 불가분리적 요소인 창조, 타락,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았다. 

한편으로는 육체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부터 육체를 단지 악한 것으로 간주하는 과도한 금욕주의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를 단지 동물적인 것으로만 인식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육체는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그 안에는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닮는데까지 이르게 하는 구속과 회복의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해었다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불경스럽기짝이없는 의식과 교리를 낳은 것이다.
 *마니와 마니교(순례하는 교회 4장)

마니(216.4.14~274.?)

마니교(摩尼敎)의 창시자. 파르티아왕국의 수도 바빌로니아 출생. 양친은 메디아 출신의 파르티아 왕국 아르사케스 왕가의 후손으로 상류계급에 속하였다. 세례파인 아버지를 가장으로 둔 가정과 주위의 영향으로 마니는 그노시스적(的)인 만다교(敎)의 감화를 받았으나, 12세 때 환상 중에 본 천사로부터 새로운 종교를 전하라는 명을 받고, 241년 자기의 종교를 세워 공생활을 시작하였다. 파르티아왕국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한 뒤 등극한 사산왕조의 샤푸르 1세(재위 242~273) 형제를 개종시키고, 그들의 비호로 마니교가 널리 퍼졌다. 그러나 바흐람 1세(재위 274~276) 때에 조로아스터 교도의 미움을 사, 227년 왕명의 소환에 응하여 투옥되었다가 옥사하였다.

 
마니교(摩尼敎)

3세기에 페르시아왕국의 마니가 창시한 이란 고유의 종교.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拜火敎]에서 파생되고,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여러 요소를 가미한 종교로서, 교조(敎祖) 마니의 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불렀다. 마니에 관한 사실(史實)은 불확실한 점이 많으나, 일찍이 조로아스터교에 귀의하여 신의 계시를 받고, 30세 때 예언자로서의 자각을 한 후,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깨달은 바를 전파, 조로아스터교로부터 분파하였다. 그 후 조로아스터교의 박해를 받고 화형을 당하였다. 그가 남긴 유서, 즉 《생명의 책》 《샤브라칸》 《신비의 책》 《마니서한(書翰)》(교훈집) 《거인(巨人)의 책》 등이 마니교의 성전(聖典)이 되었는데, 14세기 마니교 소멸 후에 없어져 그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20세기에 와서 유럽 학자가 그 사본을 발견함으로써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마니교에는 간명한 교의(敎義)와 예배 양식, 엄격한 도덕계율이 있었다. 그 교의는 광명․선과 암흑․악의 이원론(二元論)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현실세계는 명․암이 혼돈되어 있으나 멀지 않아 광명의 세계가 예정되어 있고, 그 예언자이며 지상의 구제자로서 마니가 파견되었다고 말한다. 마니교도에게는 각자 속에 내재하는 광명의 소인(素因)을 기르기 위한 엄한 계율이 요구되었다. 육식과 음주를 엄금하고, 악행을 삼가며, 정욕을 멀리하여야만 했다. 마니교는 당시 교세가 급격히 발전하여 중앙아시아 일대와 로마제국에까지 확장되고, 다시 인도․중국에까지 전파되었으나 13~14세기에 쇠퇴, 소멸하였다. 그러나 마니교는 동서 양세계를 문화적․종교적으로 결부시키는 가교적 역할을 한 공로가 크다.



6) 참된 스승들의 가르침 P40-41

분파 간의 흔란스러운 갈둥 속에서도 유능하고 설득력있게 영흔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던 참된 스숭들이 있었다.

 (1)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국적면에서 언어면에서 지키고 있는 습관면에서 구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인이 된 국가의 도시에 거주하지 않으며 특별한 형태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기상천외한 생활 태도를 가진 것도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동 양식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사색이나 사유의 결과로서 고안된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대로 순수하게 인간적 이론을 옹호하는 자들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의사 결정에 따라서 희랍과 야만인들의 도시에 거주하는데 옷 입는 것과 음식과 여타의 일상생활의 행위에서 본국인들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으며 우리들에게 훌륭하면서도 솔직한 삶의 방법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에 살지만 단순히 나그네처럼 지낸다. 시민으로써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면에서 참여하면서도 마치 외국인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 모든 외국땅에서도 그들에게 본국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출생한 모든 땅에서도 이방인처럼 지낸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그들은 후손을 멸절시키지는 않는다. 그들은 공동으로 식사는 하나 공동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나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지만 하늘의 시민이다. 그들은 법률의 금지사항을 준수하지만 동시에 생활로써 이 모든 법률들을 능가한다.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도 모든 사람으로부터 박해를 받는다. 그들은 알려지지도 않은채 정죄를 받아서 죽음을 당하지만 생명을 다시 얻는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부요케한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이 넘친다. 그들은 경멸을 당하지만 바로 그 경멸 가운데서 영광을 받는다.그들은 항상 험담을 들으면서도 옳다고 인정을 받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책망을 받으면서도 그 사람들을 축복 해 준다. 그들은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 모욕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선행을 하면서도 악행자라고 처벌을 받지만 처벌을 받으면서도 곧 생명을 얻을 것처럼 즐거워한다. 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이라고 공격을 당하고 희랍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지만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도 무슨이유로 그렇게 증오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밝히지 못한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중(기독교 사상가 발췌)


(2)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은 전능하사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자시고 ... 진리이시자 거룩하고 영원하신 말씀을 하늘로부터 보내셔서 우리 가운데 있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 확고히 세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인간의 구원자로 천사나 혹은 인간 지도자를 보내시지 않고, 모든 만물의 형태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분, 하늘을 지으시고 바다를 만드셨던 그분, 별들도 복 종하는 그분을 보내 신 것 이 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이런 사자(使者) 를 보내신 것이다 ... 왕께서 그 또한 왕인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곧 왕인 자신을 보내신 것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로서 구세주로서 자기 자신을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은 우리를 심판하려 함이 아니시다. 만일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해 자 신올 보낸다면 누가 그의 오심을 견딜 수 있으리요?


(3) 하나님은 왜 뒤늦게 구세주를 보내셨는가?

그분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위대하고도 말할 수 없올 만큼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는데 그것을 오직 자신의 아들에게만 알리셨다. 그분이 자신의 현명하신 계획올 숨기고 있는 동안은 우리를 내버려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 스스로의 힘 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정된 때가 되자 그분은 스스로 우리의 죄악올 짊어지셨다. 

죄인들을 위한 거룩한 분, 
사악한 자를 위한 홈 없는 분, 
불의한 자를 위한 의로우신 분, 
타락한 자들을 위한 순결한 분, 
죽은 자들을 위한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

그런 분인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선 것이다. 세상에 그분의 의로우심 말고 우리의 죄악을 덮어줄 수 있는 다른 것이 있었는가? 사악하고 죄 많은 우리들을 용서해 줄 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말고 누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틀의 사악함이 의로우선 한 분 안에서 사라지고, 한 사람의 의로움이 많은 죄인들을 용서 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꿈같은 변환이며 얼마나 놀라운 일이요. 또 상상을 초월한 커다란 은총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