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판단하라/구원에 대한 글들

아더 핑크ㅣ좁은 구원의 문

NOMAN 2018. 1. 31. 17:15
좁은 구원의 문



예수님은 구원 신앙이 쉽고 단순하다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구원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기는커녕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24)는 말씀대로 그 길을 걸으려면 온 힘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젊은 관원이 슬퍼하며 돌아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신학교는 목회자나 전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가 이루신 속죄 사역을 믿기만 하면’ 백만장자이든 빈털터리이든 누구나 쉽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칠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먹여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호 13:6)는 말씀대로 이 세상 부귀와 명예와 행복과 형통과 성공에 젖은 이들은 대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막 10:26)라며 궁금해 했습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이나 전도자들이 제자들의 말을 들었다면 즉시 그들의 두려움을 달래주며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확신을 심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타락한 죄인이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 신앙으로 그분 앞에 나오는 일은 오직 창조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라는 말씀은 인간의 의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직 은혜의 기적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이 구원 신앙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젊은 관원을 살펴보면 곧 그 대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마 10:22)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소유에 집착했습니다. 많은 재산이 그의 우상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세상 것에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요구는 너무 가혹했고 혈과 육으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젊은 관원에게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세상의 찌꺼기가 가득 차 있으면 하늘의 빛이 임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의 부에 만족하는 사람은 영혼의 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큰 잔치의 비유’도 이와 동일한 진리를 전합니다. 은혜의 잔치가 배설되었고 복음을 통해 모두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눅 14:18) 여러 가지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땅이나 소, 안락한 가정생활 등 다른 일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8-20절).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더 사랑하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26-27절), 모든 우상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테두리 안에서 그분을 영접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망대(방금 말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상징하는 표현)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 14:28)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영광”은 인정이나 칭찬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인기와 칭찬을 중시하고 하나님의 인정은 도외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약 4:4)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참 마음으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의 칭찬을 멀리하고, 멸시와 배척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주권에 복종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요 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영생을 얻는 것이 단순한 문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영생을 얻기 위해 다른 관심사를 모두 포기하고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온갖 힘겨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것일까요? 대답은 “아니요”와 “예” 둘 다입니다. 먼저 우리의 행위가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답은 “아니요”입니다. 영생은 값없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전심으로 구원을 추구하고 부지런히 은혜의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예”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약속이 성취된 사례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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