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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핑크ㅣ구원 신앙을 갖기 어려운 이유들

NOMAN 2018. 1. 31. 17:18
구원 신앙을 갖기 어려운 이유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이 말씀은 언제라도 원하기만 하면 인간의 의지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거짓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육신을 기쁘게 하고 피조물을 영화롭게 하는 생각입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죄의 종으로(요 8:34) 
여러 가지 정욕을 좇고(딛 3:5) 
또한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혀 있기(딤후 2:26) 

때문에 성부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그리스도께 나올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죄의 사슬을 끊어 주셔야만 비로소 그리스도께 나올 수 있습니다.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는 사람이 과연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손발이 곪거나 독에 중독된 사람이 자기 의지로 그것을 치료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구스인(흑인의 조상)이 피부색을 바꾸거나, 표범이 그 몸에 있는 무늬를 없앨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악에 익숙한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 4:18)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주석을 쓴 매튜 헨리는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의인은 영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극복해야 할 고난과 어려움과 유혹도 많고 소멸해야 할 죄도 많다. 구원의 문은 너무 좁고 구원의 길은 협착하다. 의인은 구원받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처음에는 온갖 힘든 난관을 각오하라.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와 도움을 베풀어 주신다. 믿음의 경주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계 2:10).”

존 릴리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보내시고, 성자께서는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구원의 길이 열렸다. 의인을 구원하는 사역이 완성되기까지는 극심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싸움과 두려움, 세상의 유혹과 박해, 육신의 무력함과 실패, 사탄의 불화살 등 많은 시련을 거쳐야 한다.”


구원 신앙이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은 본질상 구원 신앙의 진정한 속성에 무지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사탄이 제시하는 그럴듯한 모조 구원 신앙에 쉽게 현혹됩니다. 심지어 성경을 통해 올바른 구원 신앙을 깨닫더라도, 제자의 조건을 듣고 슬퍼하며 등을 돌린 젊은 관원처럼 그리스도를 포기하거나 소유하지도 않은 구원신앙을 소유했다고 거짓을 고백합니다.

둘째, 자기애가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 자기 부정은 너무나도 힘든 요구입니다.

셋째,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넷째, 자연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는 성경의 요구를 반기지 않습니다.

다섯째, 인간의 혈과 육은 세상에서 미움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수치를 짊어지거나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 애통하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춰 자기 고집을 뉘우치는 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딤전 6:12) 마귀를 물리치는 일(요일 2:13)은 일신의 안위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에서는 구원받고자 하면서도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싫어합니다. 삶으로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분을 단지 구원자로 영접하고 안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려면 ‘자신의 길’을 버려야 합니다(사 55:7).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온갖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높인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희생을 감당하신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속된 육신의 정욕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대속의 죽음을 믿고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삶과 행실이 불신자와 도덕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더라도 어디서나 참 신자로 버젓이 행세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이 들립니다. 마귀는 그런 속임수로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해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주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고 물으시면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배우는 것보다 배웠던 것을 고쳐 배우는 것을 더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도 사탄의 달콤한 독주에 깊이 취한 탓에 자신이 구축한 체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독주에 취해 자신의 총명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들은 내가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 인간의 노력이 더해져야 함을 주장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마치 그리스도가 이루신 속죄 사역의 완전성을 공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외에는 그 무엇도 죄인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주지 못합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실 때가 언제인가?”를 물을 뿐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동안에는 그런 역사가 분명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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