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식이 분명한 영원한 세계
(고전 13:12)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2:9)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유한한 땅에서의 유한한 지식
- 가장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최종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 세상의 근심과 염려가 하늘의 소망과 뒤섞여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는 대부분 실제적인 체험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체험을 전해 듣거나, 직접 체험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유추하는 방식을 채용한다.
- 하지만 이 땅에서는 우리가 소망하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유추해볼 만한 근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이 땅에서는 하늘에 대해 희미한 거울로 보는 것처럼 기대와 소망을 가졌으나 그곳에 가는 날 그것이 영혼의 눈 앞에서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한 광경으로 장대하게 펼쳐질 것이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간 인간의 지적인 측면에서의 변화
- 우리가 유한 세계에서 가질 수 있는 지식은 유한하다.
- 영원 세계에 들어간 영혼은 지상에 있을 때 가졌던 의문과 의심,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 지상에서 결코 알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거기서 밝히 보게 될 것이기에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계는 인간의 ‘최종의 상태’이며, 그곳에서 의심이나 의문은 존재할 수 없다.
- 영원한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보응의 상태로 들어간다. 그 보응의 결과로 선고하는 ‘최종의 상태’는 여기 지상에서의 삶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 우리가 내세에서 맞게 될 광대한 정보 가운데는 찬란한 광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깨달음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지식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죄악적이고 분별없는 삶은 분명 영혼을 가장 비참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말 것이다.
죽음 후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
- 죽음 이후에 우리에게 영원한 복락과 영원한 비참을 구분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가?
- 우리가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게 될 것
- 우리가 어떠한 것을 ‘안다'면 그것은 곧 어떠한 지식이나 정보를 ‘인지’하거나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이 없는 사람은 ‘인지’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 사도는 ‘안다’라는 표현으로 광활한 지식의 세계인 내세에서 우리가 분명한 의식을 가질 것을 진술하고 있다.
- 죽음 저편의 세계에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아시는 것'처럼 ‘완전하게 아는’ 존재의 양식을 가질 것이다.
- 이는 우리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완전한 ‘지각’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 우리가 밝히 알게 될 하나님의 진리에는 하나님의 자녀 된 영혼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복락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된 영혼에게 내려지는 죄에 대한 가공할 보응도 포함된다.
- 현세에서는 누군가의 인격과 성품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나 영원한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심험대 위에서 순식간에 드러날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범하는 심각한 오류
-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세와 죽음 이후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함
-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하루 하루 세월을 보내는 지금과 같은 삶이 영원한 세계에서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함
- 지상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이나 불완전성이 그대로 유지될 거라는 결론을 내려 지상이 가니는 유한한 특성과 신적인 무한한 특성이 공존할 거라 생각함.
- 자신의 죄의 문제, 하나님의 율법의 공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긍휼 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다면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으로까지 영혼의 문제를 이어갈 수 없다.
- 자신들의 ‘최종 상태’를 진지하게 숙고해 나가는 문제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장애를 초래함.
- 변화무쌍한 지상의 환경과는 달리 영원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확정되고 밝게 드러난다.
- 지상에서 유보되었던 모든 일은 더 이상 지체되지 않고 시행될 것이다.
- 영원한 세계에서 체험하게 될 모든 일들은 지상에서 ‘부분적으로’만 알던 것들이다.
-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실수도 없이 우리를 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식과 체험을 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빈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뚜렷하고 분병한 지각을 갖게 됨
- 하나님의 성품에서 가장 눈부신 부분은 단연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다.
- 무한히 정결하신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무한한 적대감을 가지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모든 영혼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그것은 자비와 돌보심의 표증이나, 세상과 죄를 사랑했던 죄의 노예들에게 그것은 곧 영원한 파멸의 선고이기 때문
- 모든 인간은 지상에서 가졌던 이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감각의 세계에서 입고 있던 몸을 벗는 순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면전에 서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불완전했던 안목과 깨달음이 사라진 밝디 밝은 눈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똑바로 보게 될 것이다.
지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세계를 염두에 둔 삶이어야 한다.
- 우리는 내세에 대한 어떤 거짓된 이론에도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 매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점검해야 한다.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거룩의 성품은 죄에 대한 무한한 적대감과 진노를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거짓된 이론에 기만당한 인생이 하늘의 법정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가공할 율법의 공의가 선고하는 칼날 같은 판단을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 거짓 논증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 : 우리가 살고 있는 유한한 세상에서는 그들의 논증을 명명백백하게 훼파할 눈에 보이는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
- 필연적 사실에 주목하라
- 죽음은 모든 것이 밝혀질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 영원한 세계와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버려질 것들이다.
내세에 대한 ‘무관심’, ‘냉담'
-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하나님의 면전에 서는 것은 거짓된 이론을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나아가는 것과 같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한 영혼이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뵈올 준비를 게을리 한 사람은 결코 다르지 않다.
- 세상에서 가장 완고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던 회의론자들이 맞게 될 최후나, 무관심하고 냉담했던 자들이 맞게 될 최후는 결코 다르지 않다.
- 내세에 대한 무관심하고 나태한 자세는 분명한 죄다.
- 내세에서 영혼이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 뿐이다.
-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이 사람의 낮은 조건에 맞추어 변하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
- 변화는 사람의 영혼에서 일어나야 한다.
- 마음의 성향과 마음의 정서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맞추어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음에 하나님의 성품과 달콤한 동질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 변화는 지금 일어나야 한다. 지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즐거워하지 않던 사람이 영원한 세계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정서와 성향을 가지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 우리는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매 순간 우리의 상태를 점검해봐야 한다.
- 하나님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가고자 하는 마음의 갈망이 일어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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