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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NOMAN 2016. 3. 22. 12:13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 18:22)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사상과 섭리의 전달자가 되었다. 아브라함 자신이 개인적으로는 소돔과 아무 관계가 없지만, 그는 여호와를 가까이 했기 때문에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악한 현재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길은 악한 세상의 모든 계획과 생각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다 가까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보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신문을 연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순수하고도 거룩한 말씀 속에서 나는 이 세상의 성격과 과정과, 그리고 운명에 관해 모든 것을 배운다. 그런데도 만일 내가 뉴스를 듣기 위해 이 세상 사람에게로 나아갈 경우 악마는 세상 사람들을 이용하여 나의 눈에 먼지만 뿌릴 것이 분명하다. 


만일 아브라함이 소돔에 관한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소돔을 방문했었더라면, 또 소돔의 현재 상태와 미래의 전망에 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대표적인 당대의 몇몇 지도적 인물에게 나아갔었더라면,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대답을 얻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아브라함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농업 및 기술적인 계획과 그 지방의 광대한 자원에 아브라함의 시선을 돌리도록 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눈 앞에 사고 팔며, 짓고 심으며,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들이 뒤섞여 있는 하나의 광대한 장면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은 심판에 대해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심판에 대해 언급했다면 그 사람들의 입은 불경건한 비웃음으로 가득 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돔은 소돔의 운명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아님이 명백하다. 아니,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던" 바로 그 곳이 전망(展望)을 바라보는 유일하고 적절한 곳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소돔의 지평선 위에 끼어 있던 안개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임재의 밝고도 평온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능히 이해할 수 있었다. 


- C.H. 매킨토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