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생각하라/신앙 유감

R. A. 토레이ㅣ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NOMAN 2019. 1. 11. 12:43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Why God used D.L. Moody?

R. A. 토레이 목사 저, 이 인한 목사 역




옮긴이의 글


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이 책이 너무도 명확하게 대답해 줄 것이다. 옹졸한 생활! 따분한 우리의 판에 박힌 표준 이하의 무능한 생활은 이 책에서 스태미너를 얻어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가 고깃덩어리의 노예가 되어 성령의 소욕을 계속 거스르며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있다니‥‥ 이게 될 말인가?

허울 좋은 간판만의 성도의 칭호를 떼어버리고 나아가 엎드리자! 금식하며 울고 통회해야 한다! 무장 해제 당한 패잔병 같은 꼴을 우리는 언제까지 위선으로 가장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연극을 계속할 것인가?

이 책을 읽고도 우리가 각성하지 못하고‥‥

이 책을 읽고도 우리가 슬퍼하지 못하고‥‥

이 책을 읽고도 우리가 권능 받기를 주저하거나 거절한다면 우리는 사람 아니다!

주의 종은 물론 아닐 것이다!

1967년 봄, 산정현에서 이 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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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837년 2월 5일. D.L. 무디는 미국 메사츄세츠 노스필드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시대에 가장 놀라운 사람이 될 아기였다. 위대한 장군들, 정치가들, 학자들, 그리고 문호들도 모두 가버리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며 그들의 업적과 큰 감화력도 종말을 고했지만, 무디의 업적과 그의 구원의 감화력은 계속 증거 되고 있으며 온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에 축복이 미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무디의 영적 감화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본서의 제목을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로 한 것은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 이상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디 선생을 칭찬하고자 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무런 보잘 것 없는 자를 택하여 능력 있게 쓰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생명으로 그를 구원하시고 또한 성령께서 그 안에 살아계셔서 그를 통하여 놀랍게 역사하신 사실을 소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다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디 선생을 쓰심과 같이 이 시대에 있어서도 무디 선생과 같은 준비만 갖춘다면 그를 놀랍게 쓰신 이상으로 여러분과 저를 쓰실 것이란 것을 명확히 말하고 싶다. 무디 선생을 그처럼 위대하게 쓰신 비결은 시편 62편 11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나는 이 말씀이 지당함을 기쁘게 생각한다. 권능은 무디 선생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챨스 피니, 마틴 루터, 기타 세계 역사상 하나님이 위대하게 쓰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능력도 그들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다. 만일 무디 선생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뜻 없이 주시지 않는다. 그는 이 능력을 그가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건들이 구비된 사람 즉, 성경 말씀으로 분명하게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무디 선생은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시대에 가장 놀라운 설교자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무디는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무디 선생은 그의 생애에 그렇게도 놀랍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던가?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할 때,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크게 쓰신 것은 무디의 생애에 일곱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1. 그는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D.L. 무디를 그렇게 능력 있게 쓰신 명확한 첫째 이유는 그가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280파운드의 육체 한 온스, 한 온스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었고 그의 실존의 전부, 그의 소유의 전부가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나는 지금 무디 선생이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만일 내가 그의 성격에서 어떤 흠을 찾아내려 했다면, 나는 그것을 쉽게 지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간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성경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에 따라 완전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 있어서의 완전한 사람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어떠한 단점도 없거나 고쳐야 할 무엇이 없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 무디 선생도 결코 흠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성격 중 흠이 있었다면 있었을 것이니 왜냐하면 나는 그의 생애의 말년에 있어서 그와 가장 가까이 하였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그 흠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말년에 있어서 세상 어느 누구에게보다 나에게 그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을 내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흔히 있는 어떤 결점이 그의 성격 중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안다.


내가 시카고에 부임하던 달, 우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어떤 중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난 후 그는 내게 대하여 매우 담담하게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그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면서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저 창문에서 뛰어내리라고 명령하신다면 나는 뛰어내릴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믿기를 그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해치웠던 것이다. 그는 완전히 솔직하게, 무조건 그리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무디 선생 사역의 초기에 있어서 매우 가까운 친구의 한 사람인 헨리 바알레이씨가 늘 즐겨 한 말이 있는데, "나는 하나님이 완전히 헌신한 사람을 쓰셔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싶다."고 무디가 말하였다고 한다. 바알레이씨는 이 말을 나에게 하면서 무디 선생은 "그렇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이 하나님께 자기의 전부를 드려 헌신한 사람이 무디 선생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여러분과 저도 무디가 그의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 같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도 우리의 소유와 실존을 그의 뜻대로 쓰시며 그의 원하시는 곳에 보내시며 그의 원하시는 것을 우리로 더불어 이루시도록 모두 그의 손에 의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편에서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모든 일을 순종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재주 많은 남녀, 희귀한 천재적 남녀, 많은 희생을 아끼지 않는 남녀, 그들의 생애에 있어 죄에서 해방을 받은 남녀가 수천, 수만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일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한 능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디 선생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함에 있어 부족한 점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무디의 생애에 나타난 큰 능력의 둘째 비결은 무디가 매우 깊고 의미심장한 감격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따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무디 선생을 뵈옵고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수백 마일이나 간 일이 있었는데 과연 그는 놀라운 설교자였습니다."


그렇다! D.L. 무디는 정말 놀라운 설교자였다. 내가 들은 한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설교자가 없다. 참으로 그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큰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나는 그가 설교자라기보다 오히려 굉장한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때로 그는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장애물에 직면한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모든 난문제를 극복하며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이뤄져야할 일은 그 어떤 일이건 이뤄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과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믿고 있었다.


종종 무디 선생은 새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내곤 하였다.


‘내가 XX 일을 XX 곳에서 XX 날 시작하고자 하니 내가 바라기는 토레이 선생께서 성경 학생들과 함께 하루 동안 금식하며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 역시 이런 편지들을 받을 때마다 강의실에서 그 편지를 읽어주고는 "무디 선생께서 우리가 하루 동안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먼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 자신 위에와 일에 내리시기를 기도하며, 아울러 하나님의 축복이 그와 그의 일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하였다.


이따금 우리들은 강의실에 모여서 밤이 맞도록 어떤 때는 1시, 2시, 3시, 4시, 아침 5시가 되기까지 단순히 무디 선생의 요청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까지 하나님께 기다리며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철야 기도회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가 변하고 성격이 달라져서 각처에서 능력 있는 역사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느 날 무디 선생이 노스필드에 있는 나의 집에 마차를 몰고 와서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나와 함께 좀 갑시다."하므로 나는 그의 마차를 타고 로버스레인이란 동리까지 나아갔다. 그 때 우리는 노스필드와 시카고에 있는 사업에 관계된 어떤 크고 예기치 않은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에게 매우 귀중한 다른 일들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마차를 달리고 있는 도중 우리들 앞에 먹장 구름이 달려오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로버스레인 입구에 가까운 마구간에 몰아넣어 말을 피하게 한 후 말고삐를 마차 흙받이 위에 올려놓고 하는 말이 "토레이 선생, 기도해 주시오."하므로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였는데 그도 나와 함께 기도에 합심했던 것이다.


나의 기도 소리가 끝나자 그가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오! 나는 독자가 그 기도를 들었으면 한다! 나는 그때의 기도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너무도 단순하고, 너무도 믿음직하고, 너무도 확실하며, 그리고 너무도 매달린 기도였으며, 너무도 힘 있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소낙비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마차를 타고 돌아 왔는데 어려운 문제들은 해결되고 학교 일이나 다들 두려워하던 일들도 전에 없이 잘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던 길에 우리는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우리는 사람들의 말과 비평에 개의치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만 착실히 하면 어려운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치워주실 것이고 비평에도 해답해 주실 것입니다."하였다.


또 한번은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서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여기와 노스필드의 사업을 위하여 2만 달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2만 달러가 꼭 필요합니다. 나는 그것을 기도로 해결하고자 합니다."하였다. 그는 그 2만 달러의 부족액을 소액이라도 담당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고 곧 하나님께 엎드려 말하기를 "저는 지금 당신의 일을 위해서 2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바로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길을 통하여 이 돈을 보내 주십시오."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 돈은 기도의 직접 응답으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명확히 알 수 있는 길을 통하여 무디 선생에게 주어졌다.


그렇다! D.L. 무디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으니 그는 이론상의 하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 그를 믿었던 것이다. 그는 모든 난관을 기도로써 해결한 사람이었다. 만사를 그는 기도로써 처리하고 모든 일의 최후 신뢰를 하나님께 두었던 사람이었다.



3. 그는 깊이 있고 실제적인 성경 연구가였다.


무디 선생 능력의 셋째 비결, 즉 하나님께서 무디 선생을 쓰신 셋째 이유는 그가 깊이 있고 실제적인 성경 연구가였기 때문이다. 요즘 무디 선생은 학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학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가장 저명한 학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심리학자도, 인류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전문적 술어로 신학자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다른 모든 책들을 합친 것보다 더 연구할 가치가 있는 책에 대해 매우 심원하고도 실제적인 학자였으니 곧 그는 성경학자였다. 그는 평생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죽기까지 계속했던 것이다. 무디 선생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는 나에게 "나는 어떤 연구를 하고자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납니다."라고 하곤 하였으니, 그는 그의 집 골방에서 문을 닫고 홀로 하나님과 성경으로 더불어 지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집에서 처음 지내던 날 밤을 잊을 수 없다. 그 때는 그가 나를 성경 학교 교장으로 청빙하여 내가 이미 일을 보고 있었고, 동부 어느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 전도자 수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가고 있었던 때이다. 그는 나에게 편지하기를 ‘수양회가 끝나는 즉시로 노스필드에 와 주시오’하였다. 내가 돌아올 무렵 그는 사우드벗논까지 나를 맞으러 나왔다. 그날 밤 그는 마운트 헐몬 성경 학교와 노스필드 신학교의 선생들과 함께 그의 집에서 만나 이 두 학교의 문제들을 토의했다. 한밤중까지 이야기한 후 교장들과 선생들이 집으로 돌아갔으나 무디 선생과 나는 좀 더 의논했다. 내가 그날 밤 잔 것은 매우 늦었으나 다음 날 새벽 5시경 나는 내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 무디 선생의 조용한 소리가 났다.


"토레이 선생 일어났소?" 나는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보통 나는 그렇게 일어나는 습관이 아니었으나 그 날 아침만은 특별히 일찍 일어났던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하고 함께 좀 갈 수 없습니까?"하므로 나는 그를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내가 그 때 안 것은 그는 벌써 한 두 시간 전에 일어나 그의 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 당신은 능력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의 능력을 부어주시며 그의 능력을 행사케 하시는 하나님의 책을 등한히 한다면 당신은 그의 능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수양회에 따라다니며 성령의 능력을 위해 철야기도회를 가진다 해도 이 성경을 계속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능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매일 열심히 이 책을 정성들여 연구하지 않고는 그 능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100명 중 99명의 신자가 성경 연구에 있어서 그저 장난치듯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의 99%가 생활과 봉사에 있어서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 어린아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무디 선생이 그렇게도 많은 청중을 끈 것은 그의 성경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실제적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1833년 10월. 시카고의 날에 시카고의 모든 극장들은 시민들이 그 날 열리는 세계 박람회에 갈 것을 예상하여 감히 문을 열지 못했으니 사실상 그 날 박람회에 들어간 사람이 40만 명을 초과했던 것이다. 시카고 시민들은 그 날 모두 박람회에 가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디 선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선생, 중앙음악당을 빌려 주시오.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회가 있다고 광고해 주시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무디 선생, 극장들도 문을 닫고 사람들이 잭슨 공원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갈 것이라고 하는데‥‥ 누가 오늘 이 집회에 오리라고 그러십니까?"


무디 선생은 대답하기를 "내가 말한 대로 하시오."하므로 나는 들은 대로 중앙음악당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회의 장소로 빌렸다.


그 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일을 했었다. 나는 청중이 불과 몇 명 안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날 정오에 설교할 강사였는데, 나는 내 사무실에서 부흥회 계획 때문에 너무 바빠서 12시가 다 되기까지 집회 장소에 못 갔다. 나는 들어가는데 곤란을 느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 음악당에 도달했을 때는 매우 곤란한 지경이었다. 만일 내가 건물 뒤로 돌아가서 뒷창문으로 간신히 기어올라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시간에 강사를 못 볼 뻔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청중이 내 말을 들으러 모인 것이 아니라 무디 선생의 이름이 그들을 모이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왜 그들은 무디 선생의 말을 들으려 했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무디를 당시의 철학이나 유행하는 오락이나 취미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한 권의 책, 즉 이 퇴폐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책인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디 선생의 마지막 시카고 방문을 잊을 수 없다. 시카고의 목사님들이 나를 신시내티에 계신 무디 선생에게 보내어 집회를 인도해 주시도록 청하라는 것이었다. 집회를 승낙하면서 무디 선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그러나 시공회당을 얻게 되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를 열어주셔야 가겠습니다."하시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무디 선생, 시카고가 얼마나 바쁜 상업 도시인 것을 모르십니까? 사업가들에게 있어 주일을 빼놓고 평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에 참석케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저녁 집회와 주일 집회가 좋겠습니다."


"아니오. 나는 교회의 정기 집회를 방해하기를 원치 않습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카고에 돌아와 시공회당을 빌렸는데 그 당시 그 건물은 시카고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약 7천명) 장소였다. 나는 광고하기를 무디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주간 동안 아침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를 열 것이라고 했다. 즉시 나에게 항의가 쏟아졌다. 그 중 한 사람은 시카고의 상업왕이라 할 수 있는 마샬 필트씨였다. 필트씨는 나에게 편지하기를


‘토레이 선생, 우리 시카고의 사업가들은 무디 선생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집회에 나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녁에 집회를 열어 주시오.’


나는 같은 취지의 편지를 많이 받았으므로 무디 선생에게 저녁 집회를 해 주시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무디는 단순히 회답해 오기를 ‘내가 말한대로 하시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말대로 내 할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집회 첫날 아침. 나는 개회 30분전에 회장으로 나갔다. 그 큰 강당에 도저히 차도록 모일 수는 없으리라고 걱정하여 불안한 심정으로 내려갔다. 집회 장소에 도착하자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 근처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니 4열로 회장 입구에서 네거리에 길게 늘어서서 교통이 차단된 형편이었다. 나는 간신히 강당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도 여러 사람들이 떠들면서 야단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문을 열게 되어 20명의 순경들이 관중의 난립을 막고자 했으나 순식간에 군중에 의하여 순경들의 경계선은 무너지고 문을 닫을 때는 벌써 8,000명의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이런 시간에 이런 관중을 모을 수 있었던 사람은 세계에서 무디 외에 없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무엇 때문이었나? 무디 선생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서는 박학이 아니었으나 그는 오직 한 책, 곧 이 패역한 세상이 알고자 하며 바라고 있는 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 무디는 성경을 잘 알며 성경을 잘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이 성경 말씀을 들으려 떼를 지어 모여 왔던 것이다.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 기간 중 무디 선생같이 많은 청중을 집회에 모은 사람은 없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그 당시 시카고에서 열린 가장 큰 종교적 사건은 세계종교회의가 동시에 열렸던 사실이다. 어떤 동양의 석학이 이 회의에 강사로 청빙되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 강연의 기회야말로 그의 평생에 다시 없는 시간으로 알고 논문을 준비하였다. 아마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낡은 교리에 대한 새 광명’이라는 제목이었던 듯하다.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하여 그의 친구들인 고명한 학자들에게 평을 부탁하였다. 그들은 얼마간의 교정을 가하여 그에게 돌려보냈다. 받은 충고와 평을 살려 그는 다시 논문을 재작성하여 다시 그것을 보내어 더 수정을 의뢰하기를 3, 4차례 하여 만족할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종교회의의 강사로 시카고에 갔다. 그의 강연은 내가 기억하기로 토요일 11시에 있었다. 그는 강단 밖에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11시가 되어 의기양양하여 강단에 올라갔으나 거기에 모인 청중은 겨우 여자 11명과 남자 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날, 낮과 밤에 열린 무디 선생의 집회에는 찾아오는 군중을 수용할만한 건물이 없을 만큼 굉장한 청중이 모여왔던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도 청중을 원하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주기 원한다면 연구하라! 연구하라! 성경을 연구하시라! 그리고 증거하라! 증거하라! 성경을 증거하시라!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책, 이 성경만이 장시간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고 그들을 붙잡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4.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수년간 계속 쓰신 넷째 이유는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평생에 D.L. 무디와 같은 그렇게 겸손한 사람은 다시 보지 못했다. 그는 이런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으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하나,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한다.’

이미 내가 말한 대로 그는 내가 아는 한 겸손한 사람이니 그가 이뤄놓은 위대한 일들이나 그에게 주어진 칭송을 우리 마음속에 생각할 때 진정 그는 겸손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 얼마나 그는 남을 앞세우고 자기는 숨겼는지 모른다. 언제든지 그는 강단에 설 때마다 자기 뒤에 앉아 있는 미미한 우리들을 내세우면서 하는 말이 "내 뒤에 말씀하실 분들이 저보다 더욱 훌륭합니다."하곤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할 때마다 자기 어깨 너머로 미미한 우리들을 지적하여 내세우기를 잊지 않았다. 그가 말한 그대로 얼마나 우리를 신임하고 있었는지 내가 알 길이 없으나 그는 자기 다음에 말하는 우리들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겸손을 꾸미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를 작게 여기고 남을 크게 생각하였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쓰신 것 이상으로 더 놀랍게 타인을 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무디 선생은 항상 자기를 숨기는 일을 계속했다. 노스필드 집회 때나 그 외의 집회 때에도 그는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그들에게 설교하도록 청했으니 맥그리거, 캠벨 몰건, 앤드류 머레이, 기타 여러 강사에게 그리하였다. 우리가 그를 프로그램에 넣으려면 반드시 먼저 승낙을 얻은 다음 둘째 번 설교에 그를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었다. 그는 자신을 감추기를 자주 했었다.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 환영을 받으며 하나님께 쓰임을 받다가도 스스로 높아지므로 그에게 버림을 받는 사람이 많은지‥‥ 내가 알기에 많은 수의 유능한 사람들이 자고심과 자만심으로 인하여 파선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을 회고해 볼 때 한 때 세계적 위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두 파멸되거나 버림을 받은 사실을 기억한다. 그들은 세평에서 모두 사라지고만 것이다. 왜?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자신을 너무 높였기 때문이다. 많은 남녀가 자기가 무엇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기를 시작한 때는 벌써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일찌기 전국적으로 크게 신앙운동을 벌여 매우 가깝게 일하던 친구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대단한 성공리에 버팔로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 때 그 친구는 매우 득의하여 어느 날 집회를 인도하러 거리를 걸어가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토레이씨. 당신과 나는 이 나라 부흥 운동에 가장 놀라운 인물들이오."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내가 성경을 보니 여러 사람들이 큰 일을 하고는 그것이 자기의 공로인양 자부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하였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때부터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직도 살아있으나 누구도 그의 말을 듣기를 원치 않았다. 소식조차도 수년간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D.L. 무디를 어느 누구보다 놀랍게 쓰신 것이다. 그러나 무디는 자기를 어떻게 썼건 자고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무디는 나에게 뉴욕 어느 설교자에 대하여 가만히 말하기를 "그는 나에게 매우 어리석은 말을 한 때가 있지요. 보통 지혜롭게 행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대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소. 내가 잠깐 설교를 하고 나니 그가 나에게 와서 하는 말이 ‘젊은이! 오늘 밤 참 설교 잘 했소’ 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말이오. 그의 말은 거의 나를 거만하게 만들 뻔 하였지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그 설교자의 말은 무디의 머리를 돌리게 못했다. 그 후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영국 도시의 많은 주교들이 무디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고자 뒤따라 올 때도 그는 머리를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사람인 것을 깨닫고 늘 하나님께 자기의 자만심을 제거해 주시기를 기도했고 항상 하나님 앞에 얼굴을 숙이는데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 특히 젊은이 여러분! 아마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성경교사로 그는 정말 놀라운 선물을 받았는데‥‥ 그는 설교자로서 능력이 충만한데‥‥ 얼마나 놀라운 청년인가!"


그러나 주의하시라! 하나님 앞에 얼굴을 숙이시라! 나는 바로 여기에 사탄의 사자 뱀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탄이 사람으로 낙심케 못했을 때는 그는 다른 방책으로 사람에게 다가오는 법이니 곧 그의 귀에 속삭이기를 "너는 이 시대의 지도적 부흥사이다!"


“너는 네 앞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 있는 놀라운 사람이다. 너는 놀라운 지도자가 될 것이니 곧 이 시대의 무디가 될 것이다."하면서 당신을 추켜올림으로써 보다 무서운 결과를 가지게 하는 것이며 당신이 이를 청종할 때 사탄은 당신을 멸망시킬 것이다. 수년 전까지도 화려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자고, 자만의 바람에 의하여 깨어져 그리스도교 역사의 해안에 무참히 그 잔해를 늘어놓고 있음은 정말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5. 그는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디가 하나님께 쓰인 다섯째 비결은 그가 돈에 대하여 전혀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디 선생은 거부가 될만한 기회가 많이 있었으나, 돈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돈을 수집하는데 애를 썼으나 자신을 위하여 축재하는 것은 거절하였다.

세계 박람회 때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가 자신을 위해서 당시에 출판한 찬송가 책의 인지세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때 돈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디는 돈 만지기를 거절했다. 그는 그 돈을 차지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찬송가의 출판을 위하여 투자된 돈은 그의 차지할 권리였다. 생키씨가 무디 선생과 함께 영국에 갔을 때 그 찬송가를 발행하고자 하였다. 그가 출판사에 가서 출판을 의뢰하였으나 최근 찬송가 출판에 실패한 필립 출판사의 전례 때문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무디는 자기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자비 출판의 초라한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자 엄청나게 팔려 새로이 장정을 갖추어 재출판하게 되었고 큰 이익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막대한 이익금이 무디에게 들어왔으나 그는 그것에 손대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 돈은 당신의 것입니다!"하고 받기를 재촉했으나 그는 그것에 손대기를 거절하였다.


플레밍 레벨씨는 그 당시 시카고 애버뉴 교회의 회계였는데 그 교회는 무디 장막이라는 말로 알려진 교회였다. 이 새 교회당 건물이 기초만 완성하고는 돈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레벨씨는 이 찬송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런던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로써 이 교회당 완성을 위하여 그 돈을 보내줄 것을 청하여 얻게 됨으로써 이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거액의 금액이 무디의 손에 들어 왔으나 그 돈도 기독교 각종 사업을 위하여 쓰게 하였다.


무디 선생 만년에 나는 그와 함께 어떤 도시에 가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집회에서 무디 선생은 헌금을 거두지 않는다고 광고되었다. 사실 무디 선생은 각종 집회에서 얼마간의 사례를 받았어야 했지만 이렇게 광고하였으므로 무디는 아무 말도 않고 여관비까지 자부담하고 힘든 집회를 마치고 그 도시를 떠나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의 어떤 목사가 가지고 온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 내가 개인적으로 알기에 전혀 사실무근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무디 선생이 그들에게 거액의 헌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수백만 달러의 돈이 무디 선생의 손을 거쳐갔다. 그러나 그 돈은 그를 거쳐 갔을 뿐이고 그의 손에 붙어 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많은 부흥사들이 실패하고 종말을 고하는 이유이다.


어떤 다른 이유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 시대의 많은 부흥사로 그들의 사업을 불명예스럽게 하여 그들로 암초에 부딪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나는 여행 중 동부지방 도시 연합부흥회의 한 신실한 목사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 부흥사가 53개 교회의 지지를 얻어 연합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이 도시에 도착했다. (나에게 이 사건을 말해준 목사는 이 연합집회의 재정위원장이었다.) 그런데 이 부흥사가 전에 합의한 사례 약속을 깨뜨리고 많은 금액의 보수를 요구하므로 그 목사는 자기의 재정위원장직을 사임하고자 했으나 추문을 피하기 위하여 그냥 있었다고 한다.


그 목사는 "3주일간의 집회 결과는 겨우 24명의 결신자밖에 얻지 못했고‥‥ 집회가 끝난 후 목사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이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합의하기를 먼저 그 부흥사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들의 부흥사에 대한 의견과 부흥 집회의 방법 등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기로 하였고, 또한 다른 도시 교회에도 편지하여 이 부흥사의 집회 방법과 집회 결과를 알려서 집회를 청하지 말도록 통지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이 같은 교훈을 마음에 두어 크게 경계해야 할 것으로 안다.



6. 그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데 불붙는 정열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신 여섯째 이유는 그의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고자 하는 불붙는 열심에 있었다. 그는 구원 얻고 즉시 결심하기를 하루 24시간을 지나는 동안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영혼에 대하여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는 자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는 일이 너무도 바빠서 어떤 때는 그의 결심을 잘 때까지 잊는 때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다시 입고 밖으로 나가 사람을 붙들고 말하기를 인간 영혼의 요구가 무엇이며 또한 이를 만족케 하시는 구주에 대하여 확실히 말해주지 않고는 하루도 그냥 지낼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무디 선생은 자기 사무소로부터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매우 늦은 시간이었으나 그는 갑자기 그 날 한 사람도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도록 전도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에게 말하기를 "하루를 잃어버리는구나. 오늘은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으니 이 늦은 시간에 누굴 만나서 복음을 전할까?"하니 그 사람 대답이


"내가 크리스찬이건 아니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만일 당신이 전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의 그 무례한 짓을 그냥 두지 않고 저 시궁창에 차 넣었을 것이오."하였다.


그러나 무디 선생은 몇 마디 간절한 말씀을 더 하고 지나갔다. 다음 날 그 사람이 무디 선생의 유력한 사업가 한 사람을 찾아서 말하기를 "당신 바로 북쪽에 앉아 있는 저 무디는 정말 선한 사람이라기보다 해를 끼치는 사람이오. 그는 무지한 열심장이오. 어젯밤 글쎄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모욕을 하지 않겠소.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당신이 신자냐고 묻기에 내가 신자건 아니건 웬 참견이오. 만일 당신이 전도자가 아니라면 벌써 그 무례한 말로 인하여 저 시궁창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지요. 저 사람은 선하기보다 해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오. 그는 무지한 열심장이란 말이오."하는 것이었다.


무디의 친구는 그를 보낸 다음 말하기를 "무디 선생, 당신은 좋은 일보다 해로운 일을 하고 있고 경우 없이 열심을 내고 있는 것 같소. 어젯밤 길거리에서 당신은 내 친구 한사람에게 모욕을 주었소. 당신은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묻기를 신자냐고 하였고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전도자가 아니었다면 무례한 말 때문에 시궁창에 차 넣었으리라고 합디다. 당신은 좋은 일보다 해로운 일을 하고 있고 경우 없이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오."하였다. 무디 선생은 그 사람의 사무실에서 힘없이 나왔다. 그는 생각하기를 정말 그는 유익하기보다 해로운 일을 하고 있고 그는 정말 지혜 없이 열심만 내고 있는가 의심하였다.


(지혜 없이 열심을 내는 것이 열심 없이 지혜로운 편보다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성경 진리에 능하여 설교자들을 비평하거나 교훈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들은 이 년에 한 사람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열심이 없다는 것은 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수 주일이 지났다. 어느 날 밤 무디 선생이 잠자리에 누웠을 때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즉시 일어나 문으로 가 보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필시 집에 불이 나서 문을 부수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그날 밤 그 사람이 서있었다. 그는 "무디 선생, 나는 그날 밤 가로등 아래서 당신에게 복음을 들은 이후로 밤잠을 잘 수가 없었소. 그래서 이 깊은 밤에 당신을 찾아온 것이오.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말해주시오."하는 것이었다. 무디 선생은 그를 안으로 불러들여 구원 얻으려면 어떻게 할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 후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일선에 나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날 밤 무디 선생이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눕고자 할 때 그 날도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전도하지 못한 일이 생각났다. "그래. 지금 일어나 거리에 나가봤자 이 깊은 밤에 사람을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하면서도 일어나 옷을 다시 주워 입고 현관으로 나갔다. 밖에는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 이 같이 비가 쏟아지는 데 누가 길을 가겠나."하고 있을 때 그는 우산을 받고 내려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디는 급히 뛰쳐나가 그 사람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신 우산을 좀 함께 쓰고 갈 수 있겠습니까?"


"네, 그리하십시오." 우산을 함께 쓰고 가면서 무디 선생은 "폭풍이 일어날 때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당신은 가지고 계십니까?"로 시작하여 예수를 그에게 증거했다. 여러분! 우리가 만일 이 같은 영혼 구원에 대한 열심이 있다면 얼마 안가서 이 나라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부흥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흔들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시카고에서 (그 날은 해리슨 시장이 저격을 당한 이튿날로 그의 시체가 시청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무디 선생과 나는 전차를 타고 랜돌프 시가를 향하여 시청 왼쪽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해리슨 시장의 시체를 보기 위해 모인 군중 때문에 전차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전차가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무디 선생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토레이, 웬일이오?"

"웬일이라니‥‥ 해리슨 시장의 시체가 시청 안에 있어 그것을 보려는 군중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오."

"이 많은 사람들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여기를 떠나게 할 수는 없소. 자 우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사거 훌레이극장 (시청 바로 맞은편에 있었음)을 하루 동안만 빌리시오."


나는 그렇게 했다. 집회는 아침 9시부터 시작되어 하나의 집회로 저녁 6시까지 청중에게 설교하였다.


무디 선생은 하나님을 위한 불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만 힘써 일하는 사람일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자기처럼 일하게 하였다. 그는 한 번 나에게 노스필드로 내려와서 한 달 동안 학교 순회 집회를 하라는 청탁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 말하고는 강 건너 또 다른 학교에서 말해야 했었다. 나는 자주 나룻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아직 현재의 다리가 놓여지기 전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자네를 나룻배로 날라 주는 저 뱃사공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나?"

그는 나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며칠 후 그 뱃사공이 구원 얻게 됨을 알리니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번은 무디 선생이 시카고의 어느 거리를 걸어가다가 일면식도 없는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댁은 크리스찬인지요?"

"당신 일이나 보시오."하는 대답이 왔다.

무디는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내 일이오."하니

"그럼 당신이 무디일 것이오."했다고 한다. 시카고에서는 한때 ‘광인 무디’란 말이 돌았는데 이는 그가 낮이나 밤이나 누구에게든지 만나기만 하면 그 사람의 구원 여부를 묻는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가 밀워키로 가고 있을 때 그가 잡아 놓은 좌석을 다른 사람이 차지한 때가 있었다. 무디 선생은 그의 옆에 걸터앉아서 곧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시작했다.


"어디로 가십니까?"하니 가는 도시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 그러면 곧 그 역에 도착할 것이니 곧 일을 해야겠소. 당신은 구원을 얻었습니까?"하였다.


그는 구원 얻지 못하였다고 하자 무디는 그의 성경을 펴서 열차가 가는 도중 구원의 도리를 찾아 읽어 주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하였다. 그 사람은 그리하였음으로 열차 속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다.


대개 여러분이 들었을 줄 아나 대통령 윌슨이 무디에 대하여 말한 이야기가 있다. 윌슨 대통령은 그가 한번은 이발소에 갔었는데 바로 그 때 그의 의자 옆에 무디가 앉아 있었다고 하며 이를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안 되어 윌슨 대통령은 "옆 의자에 앉은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알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무디가 이발사에게 생명의 도리를 말하고 있었으며 "내가 근자에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무디가 떠난 후 윌슨이 이발사에게 그가 누구냐고 물으니 이발사는 무디라고 하였고 윌슨 대통령은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시카고에서 무디 선생이 어린 소녀 하나가 그 손에 양동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소녀에게 걸어가서 그의 주일 학교에 나오라고 권하면서 얼마나 즐거운 곳인지 말해주었다. 그녀는 다음 주일 출석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무디 선생은 수 주일을 그녀를 찾다가 어느 날 거리에서 그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그 소녀에게 가까이 가자 그녀도 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디 선생은 쫓아갔다. 소녀가 이 거리 저 거리 도망치자 무디 역시 계속 쫓았다. 뒷골목으로 도망했으나 계속 쫓았다. 드디어 소녀는 어떤 술집으로 뛰어들었고 무디 역시 뛰어 들어 갔다. 소녀는 뒷문으로 빠져 층계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도 무디는 쫓아갔다. 방에 뛰어 들어가 소녀는 침대 아래로 몸을 던져버렸다. 무디 선생은 겨우 소녀를 침대 밑에서 나오게 하여 그녀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그는 그녀의 모친이 과부인 것과 전에는 퍽 잘 살았으나 지금은 가난해져서 이 술집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과부는 많은 자녀가 있었는데 무디 선생은 그 과부와 자녀들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다. 그 여러 자녀들은 이사 가기까지 무디 교회의 유력한 일꾼들이었고 그 후 여러 곳의 교회에서 크게 봉사했다. 이 침대 밑에서 이끌어 내어 구원 얻게 한 특별한 소녀는 내가 무디 교회 목회자로 일할 때 내 교회 직원 중 가장 유력한 교인의 부인이었다.


2, 3년 전 내가 테네시주 멤피스시 정거장에서 기차표를 사가지고 나오니 어떤 잘 생긴 청년 하나가 나를 따라오더니 이렇게 물었다. "토레이 박사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그는 ‘나는 이렇고 이런 사람입니다’하였는데 그 청년이 바로 그 부인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 때 여행가였는데 그가 사는 고장 교회의 간부였다. 무디 선생이 침대 밑에서 끌어내어 구원 얻게 한 그 소녀 전도는 결국 온 가문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 셈이 되는 것이며 그 후대 자손들을 통하여 무디는 계속 오고 오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 셈이 되는 것이다.


D.L. 무디의 영혼들을 위한 불타는 정열은 그의 일을 여기저기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랑은 계급적 제한을 몰랐다. 그는 사람의 존경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장관이건 양반이건 혹은 그가 거리의 무식한 깜둥이 소년이건 그에게는 꼭 같은 사람이었으니 구원 얻어야 할 영혼들이었고 그는 그들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정력을 다했던 것이다.


한 번은 나의 친구 한 사람이 무디 선생의 이야기를 말해준 일이 있다. 무디 선생이 어떤 무허가 판자집에 앉아 흑인 소년을 무릎 위에 앉히고 한 손에는 촛대를 그리고 또 한 손에는 성경책을 가지고 성경 구절들을 또박 또박 읽어주며 그 무식한 흑인 소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젊은 남녀 여러분! 그리고 주의 종들이여! 만일 당신과 제가 영혼들에 대하여 이 같은 불이 붙었더라면 우리가 부흥을 왜 오래 기다릴 것인가? 생각해 보라! 오늘밤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 우리의 영혼을 채워 주신다면 타오르는 불길은 우리로 전국에 퍼지게 하고 태평양을 건너 중국, 일본, 한국,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잃어버린 영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할 것이다.



7. 그는 명확히 위로부터 능력의 충만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D.L. 무디를 쓰셨는가 하는 일곱째 비밀은 그가 매우 명확하게 위로부터 능력의 부음을 받은 일, 곧 가장 명료하고 분명하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무디 선생은 그가 성령으로 세례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를 의심치 않았다. 그는 초기에도 대단한 정력가였다. 그는 무엇인가 하고자 굉장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참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의 육체적 정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주의 일에 힘썼다.


그런데 그가 인도하는 YMCA 집회에 계속 나오는 겸비한 두 감리교 부인이 있었는데 아운티쿡과 스노우 부인이었다. 이 두 부인이 무디 선생의 집회가 끝나자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 위해서 기도합니다."하였다. 무디 선생은 이 말에 찔려 드디어 어느 날 밤 두 부인에게 말하기를 "왜 당신들이 나를 위해 기도합니까? 왜 구원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하였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우리는 당신이 권능을 받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하였다.


무디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부인들에게 가서 "당신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에게 명확한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와 함께 이 일 위해 힘써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아운티쿡 여사는 그 후 나에게 무디가 이 일을 위하여 얼마나 강렬히 열정적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말로써 내게 말하였으나 나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다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는 그 부인들과만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도 기도했다.


얼마 안 되어서 영국으로 가려던 어느 날 그가 뉴욕시의 월가를 거닐고 있을 때 복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의 권능은 그가 거리를 거닐고 있을 때 그의 위에 임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한 친구의 집을 찾아가 혼자 있을 방을 청하여 그 방에서 여러 시간을 지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오셔서 그의 영혼을 놀라운 기쁨으로 채워 주셨으니 그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그는 죽을 것 같아서 하나님께 이제 그만 주시도록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성령의 권능에 충만하여 그곳에서 나와 런던에 이르자 하나님의 권능은 그를 통하여 북쪽 런던 지방을 능력 있게 역사하였고 수백 명씩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청함을 받아 인도한 만년의 집회 중 가장 놀라운 집회였다.


무디 선생은 여러 번 나에게 "토레이 박사, 나는 당신이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설교해 주기를 바라오."하였다. 나는 그가 얼마나 자주 이 제목으로 설교해 달라고 했는지 셀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뉴욕 제5장로교회에서 설교하기로 청함을 받고 (무디의 추천으로 청빙 받음; 무디의 계속 권고가 아니었더라면 그 교회는 나를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뉴욕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무디 선생이 자동차로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박사, 당신에게 설교를 원하는 뉴욕 제5장로교회는 큰 교회요.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세운 굉장한 교회요."하면서 계속 말하기를


"토레이, 나는 꼭 당신에게 한 가지 요청이 있소. 나는 당신이 거기 가서 설교할 일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꼭 당신의 설교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열 가지 이유』와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를 말씀하십시오."하는 것이었다.


자주 그는 내가 어떤 교회 집회를 맡았다고 들으면 찾아와서 "자 토레이박사, 꼭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오."하곤 하였다.

나는 그가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하였는지 다 셀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그에게 “무디 선생, 당신은 내가 두 가지 설교, 즉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열 가지 이유』와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한 즉

"좌우간 괜찮소." 하면서 "어떻든지 그 두 가지 설교만 하시오."하는 것이었다.


한 때 무디는 노스필드에 좋은 교수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개개인에게 주시는 성령의 세례는 불신하였다. 그들은 믿기를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세례 받았고 그 밖의 다른 개개인을 위한 성령의 특별한 세례는 믿지 않았다. 무디 선생이 나에게 말하기를


"토레이 박사, 오늘 밤 집회 후 내 집으로 오십시오. 내가 저 교수들을 모아 놓을 터이니 그

들에게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말해 주시오."하였다.


물론 나는 큰 관심을 가지고 가서 무디 선생과 함께 긴 시간을 말했으나 그들은 모두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갈 때 나더러 좀 남으라는 눈짓이 있어서 남았더니 무디는 그가 늘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취하는 태도 같이 의자에 앉아 턱을 가슴에 부치고 있다가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 "오! 왜 저들이 쓸 데 없이 고집할까? 왜 저들 자신들이 요구하는 바가 바로 이것인줄 알지 못할까? 저들은 좋은 교수들이오. 놀라운 선생들이고 내가 기뻐하는 사람들인데 왜 저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하나의 체험이 곧 이 성령의 세례라는 것을 알지 못할까?"하였다.


나는 죽기까지 ‘1894년 7월 8일’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 날은 바로 동부 대학들로부터 모여든 노스필드 학생 수양회 마지막 날이었다. 무디 선생은 나에게 토요일 밤과 주일 아침시간에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설교해 달라고 하였다. 토요일 밤 나는 ‘성령의 세례,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되며 그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하여 설교했다. 주일 아침 나는 ‘어떻게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나?’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바로 12시 정각 나는 시계를 꺼내어 말하기를 "무디 선생은 우리 전원이 오후 3시까지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산 위로 올라오라고 합니다. 3시까지는 3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3시까지 기다리지 못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방으로 가거나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천막으로 가거나, 어디든지 여러분이 하나님과 더불어 단 둘이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과 의논하십시오."하였다.


3시에 우리는 모두 무디 선생의 모친 집 바로 앞에 모였다. 그리고 소로를 지나 내려가서 대문을 통과하여 산허리에 다달았다. 우리는 그때 모두 456명이었는데 이 수는 바로 무디가 우리가 문을 통과할 때 세어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무디 선생은 "이 이상 더 멀리 갈 필요는 없는 줄 압니다. 여기 모두 앉읍시다."하였다. 우리는 나무 그루터기 혹은 벌목 위에 앉았다.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여러분 중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하니 그들 중 5명쯤의 학생들이 하나 둘 일어서더니 "무디 선생님, 나는 3시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나는 아침 예배 때부터 줄곧 하나님과 단 둘이 있었습니다. 나는 믿기를 나는 바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였다.


이 같은 간증이 끝나자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젊은이 여러분! 나는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사도들 위에 명확히 부어주셨던 것과 꼭 같은 성령을 바로 지금 여기 부어달라고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 못할 이유가 절대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는 산허리에서 기도하였다. 우리가 산에 올라갈 때부터 검은 구름은 뭉게뭉게 모이고 있었는데 우리가 바로 기도를 시작하자 이 구름들은 깨어져 빗방울이 되어 무성한 솔잎 사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스필드에는 10일간 또 다른 구름이 뭉게뭉게 모이고 있었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의 큰 구름이었고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 우리의 기도는 그 구름을 산산조각을 만들어 성령의 단비로 우리 위에 쏟아졌던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필요로 하고 있는 성령의 세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