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여 준행하라/연구ㅣ교회사

초대교회사ㅣ06 로마제국의 박해와 기독교의 승리

NOMAN 2017. 12. 1. 23:20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A.D 29 ~ A.D 313)


6. 로마제국의 박해와 기독교의 승리 P42-43

1) 막강한 로마제국과 무저항의 교회 사이의 특이한 싸움

교회가 로마제국과 접촉하게 되었올 때 양자 간에는 적지 않은 충돌이 발생케 되었다. 상이한 의견과 풍습의 차이로 많은 분파를 만들었던 교회였지만 고난과 승리라는 관점에서 그틀은 하나로 연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좋은 신하이긴 해도 그틀의 신앙은 황제나 우상에게 경배를 드린다거나 황제에게 신적 영광을 부여하는 것은 거절했다.


2) 로마제국의 박해

처음에는 돌발적이고 지역적인 적대 행위에 그쳤던 것이, 1세기 말엽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법을 어기는 일이 되었다. 조직적으로 박해가 이루어졌고 전 제국으로 확산되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잠잠한 적도 있었으나 더 혹독한 공격으로 재현되곤 했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고백한 신자들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재산을 압류당했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잔인한 고문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들올 신고한 자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졌고, 숨겨준 자들은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으며 발견되는 모듣 성경은 소실되었다.
3) 콘스탄틴(Constantine)의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

- 로마 제국 내에서 진행되었던 싸움에서 콘스탄틴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고, 312년에는 결정적인 승리를 얻게 되었음.
- 로마에 입성하자마자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종식시키는 칙령을 반포함.
- 칙령의 내용 : 어떤 종교인이건 간에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자유로이 따를 수 있다는 내용.

 *기독교 공인의 배경 (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

284년에 로마의 왕좌를 찬탈한 디오클레티안은 광활한 제국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권력이 미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제국을 둘로 분할했다. 그는 제국을 동과 서로 분할한 뒤 서방제국의 통치를 공동 황제에게 맡기고 자신은 동방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디오클레티안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갈레리우스는 공동황제가 다스리는 서방 로마까지 권력을 확장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서방제국 공동황제의 손발을 단단히 붙들어놓으려고 공동황제의 아들 콘스탄틴(Constantine)을 납치하여 볼모로 잡아두었다. 그러나 305년, 콘스탄틴의 아버지가 중병으로 앓아눕자 갈레리우스는 콘스탄틴을 풀어주어 부친의 병 문안을 가도록 허락했다.

얼마 후 콘스탄틴의 부친이 죽자 콘스탄틴은 갈레리우스에게 자신을 서방제국의 공동황제로 즉위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이로써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틴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만 갈레리우스가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말았 다. 임종을 앞둔 갈레리우스는 크리스천 박해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천들이 로마의 우상을 섬기기는 커녕 오히려 그리스도를 더 열정적으로 예배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갈레리우스는 “누구든지 공공질서를 위협하지 않는한” 공공연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해도 좋다는 내용의 율령을 반포했다. 

312년, 권력에 굶주린 두 명의 전사, 콘스탄틴과 막센티우스(Maxentius)는 서방제국의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전세가 불리해진 막센티우스는 서방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퇴각했다. 그런데 콘스탄틴의 군 대가 로마로 진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일로 인해 교회와 로마 제국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하늘에 보인 징표
콘스탄틴은 막센티우스와 일전을 벌이기 전 날, (아마도 태양신에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가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 하늘에 십자가가 보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십자가만 본 것이 아니라 “이 징표로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글자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방패에 크리스천의 상징을 새기라고 명하는 꿈을 꾸었다. … 드디어 강 북쪽에서 전투가 벌어졌지만 곧 전세가 불리해진 막센티우스는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막센티우스의 군대가 임시로 만든 다리를 건널 때 다리가 붕괴되었고, 막센티우스를 포함한 수백 명의 병사들이 물에 빠져 익사했다. 콘스탄틴은 십자가 상징을 새긴 군기를 높이 들고 당당히 로마에 입성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십자가가 권력 쟁탈을 위한 전쟁의 피로 적셔진 순간이었다. 


4) 기독교의 승리

로마 제국은 주 예수를 알고 그에게 헌신하던 자들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들의 인내와 무저항, 오래참음은, 그들을 향한 로마 세계의 극한 적대감과 미움을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그리고 결국은 존경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때 이방 종교들은 박해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지원을 잃게 되면서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그것은 여러모로 득(得)이 되는 일이 많았다. 악습을 금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다.


5) 새로운 위기

외부의 핍박으로부터자유로워진교회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랍이 원래의 순수성을 보존했는가 하면, 또한 많은 사랍들은 이미 살펴본 대로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했던 사도시대 교회와는 매우 다른 조직의 심각한 내적 영향을 받기도 했다(교회와 국가의 연합).

*교회사 공부의 유익(세계 교회사/홍정현P)

교회사는 교회의 기원과 발전, 기독교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냐 하는 그 내용을 체계화시켜 해석한 기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교회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데 교회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정확히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역대 믿음의 선진들이 실패한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속해 있는 교회가 어느 계통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우리가 올바로 믿고 있는지 잘못 믿고 있는지 알 수있습니다. 

교회사를 연구해 보지 않는 사람은 현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수가 있지만 교회사를 공부하면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지 그리고 역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믿음을 가졌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지를 알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인생을 투자 할 수 있다는 것도 확신하게 됩니다. 
*세계 교회사 개관 / 시대구분 (홍정현P)

세계교회사를 공부할 때 먼저 시대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 2장 3장에서 나오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2,000년 교회의 역사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 = 사도시대교회
서머나교회 = 초대교회시대
버가모교회 = 기독교가 국교로되면서 카톨릭이 등장
두아디라교회 = 중세 카톨릭시대
사데교회 =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교회 = 18-19세기 복음을 활발히 전했던 시기
라오디게아교회 = 19-20세기 넘어오면서 우리시대 교회


1. 사도시대교회 - 에베소교회 (예수님 -> A.D.100년까지

사도들이 살아있던 그 시대는 성경을 읽어보면 어디든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부활의 생명이 사람속으로 들어옴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은 즉시 세례를 주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찬식에 참여하고 또 구원받은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고 또 다른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것이 반복된 것이 초대교회 사도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과 로마황제가 특별히 방해를 했다.


2. 초대교회시대 - 서머나교회

사도들이 모두 죽고 대략 A.D100년-300년까지를 초대교회시대라고 하는데 이 때까지도 아직 교회의 변질 같은 것이 거의 없고 아주 심한 박해속에서도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복음이 활발히 전해진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기독교의 공인시대 - 버가모교회

그런데 250년부터 300년때 마리아 숭배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베드로를 우상시하고 그 다음에 로마 주교가 특별히 높아지고 잘못된 것들이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카톨릭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고(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정식 종교로 인정되고 392년 테오도시우스황제에 의해 로마 국교로 정해짐) 대거 가짜 기독교인들이 들어오면서 교회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4. 중세 카톨릭시대 - 두아디라교회

300년 400년 500년 계속 넘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카톨릭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까지 그 시대를 중세 카톨릭시대라고 합니다.


5. 제1 종교개혁시대 - 사데교회

그리고 1517년 루터가 카톨릭교회의 신부로 있다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종교개혁이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이 때 루터, 칼빈이 나오고 영국성공회, 후쓰(구세군), 쯔빙글리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개신교를 만든 것입니다.

그 때 주장이 기본적으로 3가지였는데
1)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
2)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3) 구원 받은 사람은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유명한 "만인제사장설")이다

 개신교의 5대 사상

    -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 Sola Gratia 오직 은혜로만
    - Sola Christo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 Soli Deo Gloria 하나님께만 영광을

6. 제2 종교개혁시대 - 빌라델피아교회

종교개혁은 일으켰지만 아직까지는 카톨릭의 잔제(색체)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복음이 활발히 전해지는 듯 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을 중심으로 청교도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음에 독일을 중심으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서 진젠돌프백작 같은사람이 구원을 받고 활발하게 복음을 전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영국에서 박해받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또 복음을 활발히 전했고 그래서 D.L무디 같은 사람도 나오고 영국에서는 요한웨슬레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다시 한번 개혁된 것을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청교도 속에는 장로교도 들어가고 침례교도 들어가고 회중교회도 다 속합니다. 침례교는 침례를 강조 했기 때문에 침례교도들이라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제1종교개혁, 제2종교개혁, 사도교회시대와 초대교회시대 이것들을 the orthodoxy(정통)이라고 부르는데 핵심적인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정통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반해서 카톨릭은 이런 핵심적인 내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정통이 아닙니다. 사실 성경을 아는 사람은 카톨릭을 기독교로 보지않습니다. 카톨릭은 성경과 거리가 너무도 멀기 때문입니다.

7. 자유주의시대교회 - 라오디게아교회

이제 19세기를 넘어오면서 성경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풍토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자유주의 노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신학교를 설명하자면 고신, 총신, 장신, 연신, 감신, 한신등등...이런 신학교들이있는데, 고신, 총신, 장신, 이쪽은 보수적인 반면 연신, 감신, 한신쪽으로 가면 자유주의적인 색깔이 강하고 감리교신학교는 자유주의노선에 많이 물들어 있는 학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자유주의라는 것은 독일을 중심으로 성경을 합리적으로 보는 풍토가 일어났는데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전혀 믿지 않았고 이 성경을 사람의 생각으로 비춰보면서 기적을 다 떼어내어 버리니까 성경이 이상한 책이 되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서 성경고등비평도 나오고 자유주의사조에 물든 사람은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정통교회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인간의 전적인 타락,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 예수님의 구세주되심등 이런 것들을 강조했습니다.

그에 반해서 자유주의신학자들은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만 크게 부각시키고 인간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시기가 19세기로 세상이 발전되고 잘 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타락했고 등등 이런 말들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지옥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예수님은 도덕선생식으로 그리고 성경의 내용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슐라이어마허 (Schleiermacher, Friedrich Ernst Daniel, 1768.11.21~1834.2.12) 같은 사람이 말한 것처럼 감정적인 것이 종교인 것처럼 그래서 자유주의 노선이 등장 됐고 우리나라도 이런 사조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유주의 사조가 19세기에 풍비했었는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니까 인간이 그렇게 선하다고생각했는데 인간이 선하다면 세계대전을 2번씩이나 치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니까 인간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이런 엄청난 전쟁을 2번이나 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하고 인간의 죄인됨을 강조하고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될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정통은 맞지만 이 신(NEW.NEO)정통주의 사조의 내용은 자유주의신학의 내용중 성경이 문제가 많다는 내용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오류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칼바르트인데 칼바르트가 이야기하기를 이 성경 전체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망원경이며 하나의 수단이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라고 하는 망원경을 통해서 주님을 보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키고 이 성경 가운데 어디까지를 믿어야할지를 모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신정통주의"라고 하고 이런 것을 받아 들인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1960년대로 넘어오면서 세상이 잘 되가니까 또 신자유주의가 나왔는데 다시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 성경은 여전히 오류가 많다는 것등을 강조했습니다.

그래도 예전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에서는 개인이 구원을 받으려고 바둥바둥거리기라도 했는데 이 신(NEW)자유주의에서는 개인구원이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기독교의 사명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서 사회를 구원하고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해방신학, 정치신학, 민중신학, 심지어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신학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종교가 난무하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수 없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신정통주의→신자유주의)
*문화와 그리스도(세계교회사/홍정현P)

문화는 세상을 말하는데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을 여러 각도로 보며 세상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과 융화되고 동화되어 세상사람과 똑같이 살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역사 속에 항상 있어 왔습니다. 

1)역설적인 그리스도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세상에 속하였지만 세상과 속하지 않았고 그래서 세상과 항상 갈등 속에서 살아야하고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죄에서 구별되어 살아야 하기에 항상 긴장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관점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가장 맞는 것입니다.

2) 문화의 그리스도 

그 대표적인것이 영지주의인데 물질은 어차피 악하니까 세상에 휩쓸려 살아도 아무 문제도 없고 지장도 없다고 했는데 이것을 바로 문화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3) 문화 위의 그리스도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별시켜 놓고 평신도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고 성직자는 세속에서 구별된 삶을 요구했던 곳이 바로 카톨릭인데 이것을 문화위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4)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

문화와 접촉하면 죄를 범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수도원 운동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구별(격리)되어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도 역사 속에 항상 있어 왔습니다. 

5)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 칼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문화와 제도를 적극적으로 뜯어 고쳐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를 추구하는 데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후천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칼빈입니다.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정화시키고 그렇게 바꿔 나가야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