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레미야 2:13) 우리들이 받는 시련 속에 담긴 자비하신 주님의 선한 의도를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우리들이 시련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꺼이 원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들이 하나님께 그런 계기를 마련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에 너무 결착되면 주께서 우리의 육적인 감미로움을 쓴 물로 바꾸시고 우리의 지상적인 샘물이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렘 2:13)가 되게 하십니다. 세상적인 번영이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마음을 얼마나 차갑게 만들고 우리의..
여호와 앞에서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창 10:9) 니므롯은 하나님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다. 반면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 완전한 자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세상과 죄를 멀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 뜻에 합당하고 의롭게 행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 되어 하나님을 무시하고 반역하려 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노아같은 사람이 될 것인지, 니므롯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2016.09.23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장 3,4절) 우리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을 배제하려 하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기질이 있다.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스러운 것을 인위적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기도 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며 살아간다. 그렇게 나만의 바벨탑을 쌓아간다. 그것이 진리로 인해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한 인생이다. 이 바..
2016.09.21 지금부터 칠 일이면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창세기 7장 4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일을 모두 준행했다(5절). 방주를 건조하는 오랜 시간 속에서 어찌 시험과 어려움이 없었을까. 감히 짐작하건데 방주를 짓는 동안 노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말씀을 전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무지한 자들의 조롱과 비난 가운데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굳건히 견뎌냈다.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들의 기준에선 이 세상에 노아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
도덕가는 의지로써 고통을 물리치려 하며, 예술가는 예술로써 고통을 잊으려 하며, 크리스천은 성령으로서 고통을 이기려 한다. 크리스천은 도덕가가 아니다. 그는 강한 의지로써 자기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는 미술가가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사상과 기예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더 강한 이에게 맡겨 버리고, 그 거룩한 영에 의하여 걸으려 한다. "너희가 성령에 의하여 걸어라. 그러면 육의 정욕대로 행하지 않으리라"하였다. 크리스천의 유일한 의지는 자기 이외의 능력인 성령이다. - 내촌감삼 -
힘들지 않다면 그것이 신앙의 길일까..불편함이 없다면 그것이 신앙의 정도를 걷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불편한 것 천지고, 늘 힘들고 어려움 속에걸어야 하는 것이 신앙인지도..그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진정한 신앙이 아닐까.. 전도인을 당장 주시지 않음에, 감사..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없음에 오히려 감사..아무튼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하고,모든 것에서 이미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에 민감하게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신앙.. 이 아닐까.. 신앙의 모든 요구가 진정한 갈망이 되는 순간.,그 순간을 바라며 기다리자.. -2011년 베트남에서
정답만을 제시하지 말라,도울 마음이 있다면 말뿐 아닌 확실한 행함으로 도우라.정답을 몰라서 행치 못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아론과 훌이 바위를 끌어다가 모세를 앉히고 모세의 두손을 자신들의 가슴으로 끌어안아 받쳐들고 모세의 힘을 도왔던 것처럼, 그렇게 도우라.모세도 알고 있었다. 보고 있었다.손을 내릴때 자기 백성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모습을,그럼에도 두손을 들고 있는 것은 심히 피곤한 일이었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에게 손을 들라고 말로만 권유하고 강권했다면 어떠했을까..그것은 정답임에 틀림이 없지만, 진정한 도움은 아니다. 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정답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모세를 도울 수는 없었다. 바위를 끌어다, 돕고자 하는 대상을 앉히고, 그의 두팔을 부둥켜 안고 힘을 더..
조용한 내적인 울림이 필요하다.작은 울림이라도 지금은 필요하다. 감당못할 진리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그러한 진리가 큰 울림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그 무엇으로도 깰수 없는 단단한 진리가 필요하다.곧 사람의 마음에 박히면 그로 인해 작은 울림이 생겨나고,그 울림으로 인해 삶의 전체적인 모습에까지도 변화를 가져오는 그런 진리.그러한 진리는 하나님의 고요한 속삭임에서 시작된다.하나님의 속삭임은 내 안에 작은 울림이 되어 결국엔 내 삶의 전체적인 모습에 변화를 가져온다.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시작되는 작은 울림을 기다리라. 그리고 그 작은 울림을 내것이라 진정 받아들이자.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14-20)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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